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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종합

[칼럼] 권경률이 보는 ‘천일의 약속’

드라마의 쾌감은 대개 연민과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주인공의 운명이 뒤바뀌고 그것이 서서히 깨달음으로 나타날 때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느낀다. 주인공에게 닥친 불행이 부당하다고. 그리고 저마다의 경험을 주인공에게 포개며 가슴속 깊이 공감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똑딱거리는 소리에 숨죽이면서.

‘천일의 약속’은 초반부터 그런 쾌감을 극대화시키며 시청자들을 몰아세운다. 서연은 아닌 밤에 홍두깨처럼 사랑을 잃었고, 또 그 소중한 날들의 기억마저 잃어 가고 있다. 알츠하이머로 그려지는 정신적인 죽음은 오히려 육체적인 죽음보다 잔인하다. 역시 김수현 작가구나, 탄성이 흘러나온다. 쫄깃하다. 강렬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이슈로 떠오른 데는 김수현 특유의 ‘대사빨’도 단단히 한몫한다.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치고 나간다. 일상의 언어와 다른 문어체 대사다. 그래서인지 일부 시청자들은 대사가 몰입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어찌 보면 드라마 몰입을 방해하는 것은 김수현의 ‘오버’가 아니라 ‘존재감’일지도 모른다. 대사가 튀거나 거슬리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김수현을 의식하고 끄집어낸다는 말이다. 그걸 인정한다면 대사가 달리 들릴 것이다. 짧은 호흡은 오히려 일상의 호흡과 닮았다. 문어체 대사는 개연성을 부여한다.

‘수애를 앓는’ 시청자라면 고마워할 일이다. 캐릭터의 감정선을 살리면서도 이야기를 극적으로 끌고 가는 김수현의 존재에.

/권경률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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