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에서는 카운터파트에게 불신감을 주면 안 된다. 그러고도 소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머리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
현재 한·중 관계는 혈맹 다음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있다. 수교 20년 만에 이 정도가 됐다면 일단 대단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소통을 염려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내용은 그게 아닌 듯하다. 소통은커녕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양국 정상이 1주일째 전화 통화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렇다고 해야 한다.
이유는 있다. 중국의 오만한 고자세를 논외로 할 경우 한국이 지난 4년여 동안 너무 ‘닥치고 미국’ 식의 외교·안보 정책을 실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 중요한 입장에서 이런 행보는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대한중국'으로 불리는 것도 곤란하듯 '대한미국'이라는 조롱을 중국에 받으면 정말 피곤해진다.
더구나 얼마 전에는 “강력한 중국의 대두를 막기 위해 미국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말이 한국 정상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중국이 이 소리를 듣고도 “허허!” 하고 웃음을 흘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이때 중국은 한국 정부에 공식 항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다. 중국이 무위지치(無爲之治.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스림)라는 말에서 보듯 중국이 한국과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서 기대를 접는다면 피곤해지는 쪽은 분명해진다.
지금 한국 고위 공무원들의 입에는 실용(實用)이라는 단어가 거의 달려 있다. 그러나 한·중 관계를 보면 이 실용은 실용(失用)이 돼버린 지 이미 오래다. 상대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보인다.
양국이 27일 서울에서 차관급 전략 대화를 연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한반도 정세 안정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그동안의 한·중 관계를 생각하면 전략이 전락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새해부터는 새 판을 짜고 한·중 관계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을 성 싶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