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역사에서 빙하기가 네 차례 정도 거듭되면서 적지 않은 생물체의 종이 사라졌다. 그러나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에 적응하는 생물체가 뒤이어 등장했다. 거대한 얼음이 깔려 있던 땅이 녹자 대홍수가 일기도 했지만, 풀이 돋아나고 그 초록지대를 따라 순록의 행렬이 이어졌던 것이다.
지구를 뒤덮은 빙하기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궤도가 조정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추론하기도 한다. 우주 전체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그 안에 각기 다른 에너지를 가진 별들이 서로 끌어 당겼다 밀어제쳤다 하면서 어느 별은 더 커지고 어느 별은 산산조각이 나서 흔적이 없어지고 또 어느 별들은 막강한 에너지를 가진 별을 중심으로 돌게 된 것이다. 인간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오늘날과 같이 태양계의 질서가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모두 인간을 위한 환경이 만들어지는 우주의 노동이라고 할 만 하다.
인류의 출현은 직립보행을 한 원인(猿人)이 동부 아프리카에 살았던 200만 또는 300만 년 전이라고들 하는데, 학자들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4만 년에서 1만 년 전 사이에 현생 인류의 조상들이 나타났다고들 한다. 사실 인간이 등장한 시기에 인간이라는 생물체는 희귀동물과에 속했다. 인간은 전체 생물의 체계에서 비주류였고, 환경 적응력으로 보자면 가장 낙후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길고 긴 세월을 거치면서 인류는 대체로 오늘날과 유사한 모습으로 자신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추우면 옷을 입고, 더우면 옷을 벗는다.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어느 생물체도 이렇게 하지 못한다. 이젠 표범보다 빠르고 소보다 힘이 세다. 생각의 힘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다.
한 해가 끝나면서 우리의 세월은 그저 흘러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그 축적의 힘은 어느 순간 강렬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네발로 기어 다녔던 존재가 어느 날 일어서서 직립보행을 했다. 그러고 나서 도구를 만들고 문명을 일구었다. 그러니 지난 시기 어느 순간에 인류가 좌절해서 이 진화의 노력을 포기했다면, 지금 우리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의 직립보행도 그렇게 이루어진다. 먼저 두 발로 서지 않으면 손과 머리를 제대로 쓸 수 없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