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를 감동시켜라.”
최근 정치권에 떨어진 특명이다. 명망가 위주의 화려한 스펙과 명성만으로는 더 이상 표심을 잡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최근 부쩍 정치에 관심을 높이고 있는 젊은 유권자들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도 심금을 울리는 감동 스토리는 총선 출마자가 갖춰야 할 필수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7일 회의에서 “현장에서 국민과 희로애락하면서 소중한 경험을 가진 분들, 국민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진정성 있는 분들이 우리 당에 많이 와주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인간극장’식 인재 발굴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탈북 여성박사 1호로 알려진 이애란(48)씨를 영입 대상에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1997년 돌이 지나지 않은 갓난 아들, 부모와 함께 탈북한 뒤 국내에서 갖은 역경을 이겨내고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난해 미국 국무부로부터 ‘용기있는 국제 여성상’을 수상했다.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 엄마로 출연한 필리핀 귀화 여성 이자스민(35)씨도 영입대상이다. 필리핀 의대 출신으로 95년 한국인과 결혼해 귀화한 이씨는 이주여성 봉사단체를 이끄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이밖에 ‘행복전도사’를 자임하는 구두수선사 김병록(53)씨, 사회주의노동자연맹을 만든 백태웅(50) 하와이대 로스쿨 부교수의 영입설도 흘러나왔다.
민주통합당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새 대변인으로 신경민 MBC 전 앵커를 위촉한 이면에는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촌철살인의 클로징 멘트와 정권의 핍박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어 검찰의 자성과 비판을 요구하며 사표를 던진 백혜련 전 검사, ‘촛불 변호사’로 알려진 송호창 변호사를 잇따라 영입하며 ‘스토리’를 더했다.
◆ "이미지 매몰 부작용 우려"
정치권의 이 같은 변화는 연초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토크쇼 ‘힐링캠프’ 출연 이후 가속화하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정치인들이 속내를 드러내면서 지지율과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린 덕분이다.
여기에 탈권위와 진정성, 훈훈한 감동, 공감할 만한 스토리를 중시하는 사회분위기가 한몫했다.
회사원 박효경(32)씨는 “예능프로에 출연한 정치인들을 보며 친근감을 느꼈다”며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정치도 잘할 것이라고 여겨져 그런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감동을 주는 정치인이 정치도 잘한다고 판단하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며 “유권자들은 감동적인 스토리로 만들어지는 이미지에 매몰되기보다 정치인의 능력·정책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