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휴스턴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하고 2년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내한 무대가 떠올랐다.
당시 30여분만에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목감기까지 겹쳐 더욱 엉망이 된 음색으로 뒤범벅된 공연을 계속 지켜보다가는 앞으로도 더 이상 그의 노래를 듣지 않게 될까봐 내린 고육지책이었다. 그 만큼 실망과 아쉬움이 컸다.
대중은 고인을 흔히 ‘노래 잘 하는 여가수’ 정도로만 여긴다. 그러나 휴스턴이 팝 음악사에 남긴 업적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성인 대상의 스탠더드 팝 시장을 다시 개척한 공로가 가장 먼저 꼽힌다. 그가 처음 등장한 1980년대 중반은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 유투, 메탈리카와 본 조비로 각각 대표되던 R&B 계열의 팝, 록, 정통 헤비메탈과 아메리칸 팝 메탈 진영이 치열하게 영역 다툼을 벌이던 시기였다.
이 때 맑고 풍부한 하이톤을 앞세운 휴스턴이 등장했고, 배리 매닐로우의 퇴조 이후 한동안 음반 구입에서 멀어졌던 스탠더드 팝 팬들은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80년대 팝을 이야기할 때 ‘휘트니 휴스턴’이란 이름을 빼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자국인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후배 여가수들에게 미친 영향 역시 엄청나다. 머라이어 캐리를 시작으로 셀린 디온과 토니 브랙스턴을 거쳐 지금의 비욘세까지 그의 그늘에서 자유로운 디바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도 무척 많은 편인데, 이 중 양파는 “엄마 같은 보컬”이라고 칭송할 정도였다.
고음에서 더욱 청아하고 명징해지는, 그래서 더욱 전무후무할 ‘매직 보컬’을 이제는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그동안 휴스턴의 노래로 위로를 받아온 대중에게는 엄청난 비극이요, 상실이다.
/임진모(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