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남인천중·고교에서 열린 성인반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도정환기자 doremi@
요즘 졸업식에서 눈물을 찾아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알몸 뒤풀이’ ‘교복 찢기’ 등 졸업생들의 일탈을 막기 위해 경찰이 집중단속에 나서면서 졸업식이 삭막해졌다는 소리까지 터져 나올 정도니까요. 그러나 조금만 눈길을 돌려보면 졸업의 참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는 ‘감동의 졸업식’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메트로신문이 만학도들의 졸업식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14일 인천 학익동 남인천중·고등학교의 한 교실. 뽀글뽀글 파마머리거나 결혼식이라도 가듯 곱게 올림머리를 한 평균 50대 이상 중년 졸업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흔히들 말하는 만학도다. 때늦은 가족들의 축하가 낯설 법도 하건만 이들의 얼굴에는 평생의 한이 풀린 듯한 설렘이 가득했다. 졸업장과 졸업 앨범을 나눠주는 담임교사의 품에서 눈물을 훔쳐내는 졸업생들도 있었다.
남인천중·고는 1984년 개교한 학력인정평생교육시설로 학업 적령기를 놓친 이들의 교육을 맡고 있다. 중·고등학교 성인반의 경우 방학을 없애 각각 3년 과정을 2년으로 단축, 총 4년 안에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날 남인천중·고에서는 중학생 148명, 고등학생 172명이 빛나는 졸업장을 받았다. 이중 중학생 80%, 고등학생 50%가 상급학교로 진학했다. 진학률은 일반 학교에 비해 낮지만 이들에게 졸업은 ‘배움의 한’을 푼 뜻 깊은 선물이다.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한 임재옥(70)씨는 졸업식이 끝난 후에도 눈물만 찍어 냈다. 임 씨는 “병치레를 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업을 중단했는데, 50년 넘게 살면서 아들·딸한테도 털어놓지 못했다”며 “다행히 남편이 권유하고 4년간 등·하교를 시켜 줘 졸업할 수 있었다”고 감격해 했다.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아내와 사별 후 술로 세월을 허비하다 현재 부인의 권유로 남인천중·고에 입학한 나영주(46)씨는 “같은 반 형님·누님들 덕분에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졸업까지 할 수 있었다”며 “가족들도 학교를 다닌 후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했다”고 함박 웃음을 지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권택봉(29)씨의 얼굴에는 어머니 안임순(57)씨가 자랑스럽다는 미소가 가득 번져있다.
권씨는 “엄마는 이제서야 중학교를 졸업한다고 부끄러워하지만 내겐 정말 뿌듯한 일”이라며 “영어 알파벳을 묻고 켤 줄도 모르던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연습을 하는 걸 보면서 엄마가 새로운 세상을 찾은 것 같아 기쁘다”고 엄지를 내밀었다.
만학의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는 졸업생도 있었다.
◆ 가수 민혜경 친언니도 졸업장
가수 민혜경씨의 친언니인 백춘자(52)씨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엄마들은 우리 나이 쯤 되면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데 배움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시도해 본다면 오늘 졸업한 우리들처럼 희망적인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았다.
지난해 동고동락한 중3 학생들을 졸업시킨 채현숙 교사(46)는 “공부에 대한 열망이 많았던 학생들인지라 한글자도 놓지지 않겠다는 눈빛과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삶에 대한 자세는 더 많이 배운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