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업체 1위인 현대·기아차의 파워가 또 한번 입증됐다. 신용카드사가 현대ㆍ기아차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의 수수료율 인하요구를 모두 거부했기 때문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신한카드, KB국민카드, 삼성카드 등은 지난해 12월 현대차에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압력이 강하게 들어오자 곧 바로 굴복했다. 이들 카드사는 현대와 기아차에 대해 신용카드는 기존 1.75%에서 1.7%, 체크카드는 1.5%에서 1.0%로 수수료율을 일제히 낮췄다. 하지만 한국GM, 르노삼성, 쌍용 등 다른 업체가 같은 수준의 수수료 인하를 요구했으나 이를 거절했다.
카드사가 현대기아차의 요구를 바로 수용한 것은 시장지배력 때문이다. 양사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차를 사는 사람 10명 가운데 8명이 현대기아차 고객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카드 수수료를 낮출 수밖에 없다. 반면 나머지 업체의 경우 카드 결제를 거부한다해도 수수료를 낮춰 이익이 줄어드는 것만큼 손해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카드사의 이번 결정으로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고객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수수료 할인으로 수익이 더 증가하고 기업 본연의 임무인 R&D에 투자할 수 있는 돈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이는 곧 품질,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지고 제품 가격 할인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반면 현대기아차 외 기업은 카드 결제에 드는 비용을 줄이지 못해 그렇지 않아도 궁핍한 투자 환경을 바꾸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이들 기업이 만드는 차는 장기적으로 현대기아차를 넘어설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한국GM의 준중형 쉐보레 크루즈를 구매한 이규현(가명·32) 씨는 "현대기아차를 사면 중고차 가격도 천천히 떨어지는 등 장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비주류 업체의 제품을 산 것은 조금이나마 회사 성장에 도움이 되길 바란 것인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르노삼성의 SM5를 장만한 정성기(가명·37) 씨는 "현대기아차가 너무 많이 다녀서 개성을 살리기 위해 SM 5를 선택했는데 안타깝다. 이들 업체가 힘을 합쳐서 한 목소리를 냈더라도 이런 결과가 나왔을 지 의심스럽다"고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