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님하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에요?"
B: "님이랑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A: "님하 '현피' 뜨삼."
인터넷 게시판 댓글의 일부다. 익명으로 로그인한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현피(현실+Player Kill)'란 말은 인터넷에서 게임이나 말싸움을 한 사람들이 온라인에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에서 만나 격투로 승부를 가른다는 뜻의 신조어다. 물론 현피로 실제 싸움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해소되지 않은 분노가 언제든지 폭력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연달아 화제가 되고 있는 각종 'OO폭행녀' 사건도 현피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채선당 종업원이 임산부 손님 배를 걷어찬 사건이나 무단횡단하다 자신의 차에 부딪힌 10대 여학생을 슈퍼까지 쫓아가 폭행한 사건 등은 대인 관계에서 자제력을 잃은 우리 사회의 현 풍토를 드러낸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이유 없이 주먹다짐을 벌이는 할리우드 영화 '파이트 클럽'과 같은 상황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폭력의 원인을 바쁜 일상에 치여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개인의
순간적 충동조절능력 상실에서 찾았다.
'주먹을 써서라도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피해의식 등도 작용했다고 봤다.
◆사소한 언쟁에 주먹부터 나가
스트레스와 피해의식이 개인의 행복을 막아서는 요인이지만,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부당한 폭력을 가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또 다른 사회악을 부른다. 개인의 폭력을 합리화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되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진성남 메타메디 병원장은 "충동조절이 어려운 사람들은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화가 나면 극단적 수단을 써야 화가 풀린다. 일반인들도 특정 상황에서 누구나 그럴 가능성이 존재하며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의 경우 폭력 빈도가 더 높다"고 말했다.
타인의 행동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록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미덕이 절실하다. 갈등과 그것을 해소하는 노력은 건강한 인간관계에서 필수절차인데 이 과정을 버겁게 여길 수록 타인에게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마녀사냥으로 치닫는 네티즌 문화를 경계해야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언론의 자극적 보도 경쟁에 사건의 심각성이 부풀려질 수 있으며 진상이 채 드러나기도 전에 여론 감정이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진 원장은 "다만 이같은 사건을 접할 땐 신중해야 한다.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됐기 때문에 실제보다 '묻지마 폭력'의 심각성이 과장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정 기자 hjkim@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