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둔 시기에는 사극 드라마가 유행하는 경향이 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는 '용의 눈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7년에는 그야말로 사극 열풍이 대세를 이뤘다. '주몽'과 '대조영'에 이어 '태왕사신기', '왕과 나', '이산' 등이 대선 정국과 맞물려 갖가지 뉴스를 만들어내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올해라고 다르지 않다. KBS1 '광개토태왕'은 지난해 여름 출발해 4일 76회분을 내보냈다. 시청률 17%대를 기록하면서 순항중이다.
얼마전 MBC는 두 편의 사극을 잇따라 내놨다. 수목극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이 시청률 40%대로 인기몰이 중이고, 마지막 주자인 주말드라마 '무신'은 초반 10%대에 진입했다.
세 드라마는 이른바 '컨셉트'가 다르다. '광개토태왕'은 정통 사극을 지향한다. 주로 중년 남성들을 시청자층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해품달'은 퓨전 사극이다. 사극의 틀 속에 트렌디한 요소를 다분히 가미했다. 우선적으로 겨냥하는 시청자는 아마도 젊은 여성일 성싶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선풍적인 인기를 감안컨대, 남성 시청자들의 지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무신'은 '절충형'이다. 정통과 퓨전의 중간쯤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대선 정국'을 앞두고 정작 중요한 것은 사극 드라마의 범람이 현실 정치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이다. 이 시기에 사극이 쏟아지는 까닭은 제작자들이 '사극이 정치 드라마'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정치'보다 '드라마' 쪽에 방점을 찍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정치는 소재로만 국한될 뿐 주제로 확장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사극 드라마는 현실 속의 정치마저 '볼 만한 게임'으로 치환하는 힘을 발휘한다.
애석하게도 그것이 사극의 본질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기 드보르의 개념을 잠시 빌려오자면, 사극에 심취한 시청자는 "집중된 스펙타클을 소비하는, 수탈당하는 대중"의 지위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내 삶의 정치성'을 상실한 채 '정치판의 관전자'가 되도록 강요받는다는 얘기다.
사극의 유행은 그렇게 사람들을 '구경꾼'의 자리로 이끌면서, 현실 정치에서 약보다는 독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문정(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