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굵은 미소와 나지막한 목소리는 '꽃중년'이라는 수식어와 딱 들어맞지만, 몇 마디 대화가 오가자 이내 장난기가 스며나온다. 영화 '화차'(8일 개봉)는 '알고 보면 웃긴 남자' 조성하(46)의 본색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강행군=영화 '5백만불의 사나이' 막바지 촬영하느라 밤새고, 하루는 TV조선 드라마 '한반도' 촬영장서 밤샌다. 그러고 틈 날 때 '화차' 홍보하고, 이동할 때 잠시 눈 부치는 게 수면의 전부다. 내 생애 이 보다 바쁜 적은 없었다. 몸은 피곤해도 기분은 좋다.
■인간미=그동안 왕·재벌·보스 등 힘있고 어두운 역할만 해왔다. 연기도 절제돼 있었다. 이번에 연기한 종근은 사촌 동생 문호(이선균)의 부탁을 받고 그의 사라진 약혼녀 선영(김민희)의 행방을 추적하는 전직 형사다. 많이 풀어진, 실제 나의 생활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래도 편의점 절도범에게 맥주 캔으로 맞는 장면은 내가 생각해도 부끄러울 정도로 없어보이긴 하다. 후반으로 갈수록 직업적인 기질을 발휘해 본능적으로 사건 깊숙히 파고드는 예리함을 드러내기 때문에 마냥 싱거운 인물은 아니다.
■진지한 배우=변영주 감독은 나를 '진지하고 어른스러운 느낌과 바닥 같은 느낌이 동시에 느껴지는 배우'라고 했는데,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다른 감독도 왕이나 재벌 같은 근엄한 역할을 맡겨주니 감사하지만, 나는 참 수다떨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예능프로그램도 자주 나갈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부담 없이 즐긴다. 특히 지난해 KBS2 '1박2일'은 나를 편안한 동네 아저씨로 만들어 준 고마운 프로그램이었다. 덕분에 이전에는 '어떤 배우'였지만, 지금은 '조성하'라고 불려진다.
■색깔=색깔이 없는 게 내 색깔이다. 얼굴이 진짜 잘 생긴 것도 아니고, 아주 못 생긴 것도 아닌 틈새 얼굴을 지녔다. 무명 때는 이런 이유로 역할 얻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역할에 쉽게 대입할 수 있는 얼굴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했던 인물들 모두 조금씩 달랐다. 앞으로도 새로움에 대한 기대치가 있는 배우로 남고 싶다.
■대기만성=90년대 중반 영화계에 새로운 흐름이 생기면서 연극배우들의 충무로 진출이 활발히 이뤄졌다. 그러나 일찍 결혼한 나는 가정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고, 1년에 한 두 편의 연극 외에는 장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20~30대 잘 생긴 배우들에게 가야할 기회를 하나 둘씩 운좋게 얻어 왔고, 이런 것들이 쌓여 오늘 '화차'의 주인공까지 하게 됐다. 내가 '황해'에 함께 출연한 김윤석으로부터 한 수 배우고 동기를 부여받았듯이, 다른 동료들도 나를 통해 더 진취적으로 활동했으면 한다.
■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