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사도세자의 죽음을 꼽을 수 있다.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서 죽게 한, 드라마는 물론이고 수 많은 책에서 다룬 아주 유명한 비사이기도 하다. 죽은 세자의 아들이 훗날 할아버지를 이어 임금(정조)이 됐다는 점에서 일반인에게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사도세자가 죽은 원인은 지금도 명확히 알려지지 않아 호기심을 더하고 있다. '조선 왕을 말하다' '윤휴와 침묵의 제국'과 같은 대중역사서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사도세자의 고백'을 업데이트한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에서 세자가 정치논리에 희생됐다는 주장을 펴 이른바 '당쟁희생설'이 대세가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최근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세자는 반역죄로 처형됐다'는 주장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끈다. 그는 신간 '권력과 인간(문학동네)'에서 "사도세자는 영조를 죽이려는 의도가 있었고 이를 알아챈 영조가 세자를 반역죄인으로 다스린 것"이라고 역설한다.
정 교수가 반역설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폐세자반교'다. 세자 지위를 폐한다는 명령을 담은 이 문서는 당시 개인 문집인 '현고기' '대천록' '모년기사' 등에 실려있다. 기록에 따르면 세자가 뒤주에 갇히던 날 사도세자의 생모 선희궁은 영조에게 "세자가 하인 등 백여명을 죽였으며, 저도 죽이려 했다. 임금의 목숨도 위험하니 사실을 아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도 인용했다. 사도세자가 칼을 차고 영조가 있는 경희궁으로 갔다는 정황이 나오고 이를 두고 영조는 꼬투리를 잡아 아들을 역적으로 몰았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반대입장에 있는 이 소장은 "왕조 국가에서 차기 지존이 야당(소론) 지지자라면 집권당(노론)이 위기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정 교수는 혜경궁 홍씨가 친정을 변호하기 위해 쓴 '한중록'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두 책이 사도세자의 죽음을 놓고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지만 공통점은 있다. 권력 앞에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