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야사에는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사건인 아관파천 때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당시 커피는 한자식으로 발음해 가비차로 불렸다.
15일 개봉될 '가비'는 이같은 야사를 토대로 한 픽션 사극이다.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따냐(김소연)와 그를 사랑하는 일리치(주진모)가 목숨을 담보로 조선계 일본인 사다코(유선)의 사주를 받아 고종(박희순) 암살 작전에 투입된다는 이야기다.
김탁환의 소설 '노서아 가비'를 원작으로, 허구와 역사를 절묘하게 섞었다.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라는 소재가 신선하고, 유약한 군주로 묘사돼온 고종을 새롭게 재해석해 흥미롭다.
첫 장면을 장식한 주진모의 화끈한 기차 액션신, 고종이 있는 러시아 공사관의 이국적인 풍경, 김소연의 화려한 의상 등 볼 거리가 풍성하다. 또 숨가쁘게 액션·멜로·첩보를 오가는 덕분에 두 시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다.
네 배우의 연기도 크게 흠잡을 데 없다. 김소연은 커피에 독을 타 고종을 죽이라는 임무를 받고 고뇌하는 따냐 역을 강단있고 매력있게 표현해, 15년만의 영화 주연 복귀식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주진모는 목숨조차 아깝지 않은 사랑을 섬세한 연기로 녹여냈고, 박희순은 비운의 왕을 카리스마와 절제의 균형 감각으로 표현했다. 사다코 역의 유선 역시 특유의 눈빛 연기로 긴장감을 더한다.
그러나 조금의 아쉬움도 남는다. 커피라는 소재는 신선했으나 이를 우려내는 기술이 부족해 향과 맛이 조금 모자란 느낌이다.
복잡한 사건들을 한꺼번에 담으려다 보니 줄거리가 유연하게 흐르지 못해 몰입도가 떨어진다. 그럼에도 신선한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