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찾아오는 스무 살의 첫사랑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가슴 한 켠에 퍼런 멍울로 남는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 첫사랑을 만났을 때, 그가 어떤 모습이건 처음 만났던 그 시절로 돌아가 사랑의 습작을 다시 하고 싶게 만든다.
이런 첫사랑의 느낌을 그대로 옮겨온 영화가 '건축학개론'이다.
서른 다섯의 건축가 승민(엄태웅)에게 숫기 없던 대학교 1학년 때의 첫사랑 서연(한가인)이 불쑥 찾아온다. 승민은 제주도에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는 서연과 함께 집을 지으면서 아련한 스무 살의 첫사랑이 떠올린다.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나 가슴 설레는 첫사랑을 느꼈던 그 시절이….
순수하고 어렸기에 감당하기 힘들었던 승민의 오해와 이별. 그리고 15년이 지나 이제는 상처가 많이 난 채 돌아온 서연을 바라보는 승민의 얼굴엔 아쉬움과 회한이 조금씩 묻어난다.
영화속 건축학개론 수업에도 나오지만 거리엔 물리적·시간적·심리적 거리가 있다. 그런데 첫사랑은 물리적·시간적 거리가 아무리 멀더라도 심리적 거리는 항상 가깝게 느껴진다.
데뷔작 '불신지옥'에 두 번째 작품에 도전한 이용주 감독은 싱그러운 첫사랑의 사연을 집을 짓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 삽입시켜 첫사랑의 심리적 거리감을 점점 가까워지게 만든다. 현재와 과거의 거리감을 없애는 연출 솜씨가 능수능란한 베테랑같다.
극중에서 집은 중요한 메타포로 등장한다. 15년 전 서연이 살기 바랐던 2층집과 그에 얽힌 사연은 후반부 마음을 시큰하게 만든다. 현재의 제주도 집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두 사람의 마음을 닮았다.
2인 1역을 해낸 엄태웅과 한가인, 이제훈과 수지의 연기는 맞춤옷처럼 이 영화와 어울린다. 특히 이제훈과 수지의 연기가 나뭇잎에 맺힌 아침이슬처럼 빛난다. 승민의 친구로 나온 조정석의 코믹 연기는 '건축학개론'의 또 하나의 발견이다.
아팠지만 돌이켜보면 행복했던 그 시절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해준 '건축학개론'에 감사한다. 2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이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