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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남해바다 풍경

남해 바다가 갓 잡은 물고기처럼 펄떡인다. 햇살에 비늘이 번쩍이면서 바다는 몸을 뒤튼다. 싱싱한 표정으로 봄을 맞이하는 어촌이 기지개를 펴고 배를 띄우면, 섬들은 섬들 사이로 뱃길을 내주느라 바빠진다. 태양은 남쪽 마을에 더 자애로운지 아니면 편애를 하는지 벌써 꽃들을 피워내고 있다. 남해로 가는 길은 꽃길이 된다.

지리산 구비를 넘어 반도 끝에 매달린 마을에 들어서니 도시는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상 위에 오른 바다의 서늘한 비린내는 태고의 시간에 물속에 잠긴 숲이 땅에 돌려주는 향기다. 심해(深海)의 소문을 들려주는 해초(海草)는 여전히 신선한 육체를 과시하고 있었고, 갯벌의 이야기를 간직한 조개는 자기의 비밀을 은밀히 드러내고 있다. 그건 남해의 전설이 차려준 식탁이다. 가슴이 벅차진 나그네는 술 한 잔의 흥취에 아직 내리지 않은 붉은 노을을 미리 바라보고, 바다의 그림 속으로 스며든다.

대낮의 격렬한 노동에서 풀려난 조각배는 등에서 무거운 짐을 풀어 내린 말처럼 한가롭게 바다의 들판에서 출렁거린다. 선주(船主)는 어느 주막에서 이웃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거나 아니면 다음 날 출항을 위해 이미 잠을 청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정박할 장소를 찾지 못한 채 유랑하는 자처럼 해변에 느슨하게 메인 작은 배들도 있고, 원양어선처럼 커다란 육체를 가지고도 여전히 쓸쓸해하는 선박들의 고독한 고동소리가 들린다.

아니던가? 바다는 언제나 떠나는 자리이자 돌아오는 귀로다. 누군가는 떠나서 아직도 오지 않고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귀환을 확신하며 떠날 차비에 마음에 설레다. 그러니 수평선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지 않구나. 아련하게 가슴을 조여 오는 내상(內傷)을 품은 바다는 침묵하고 있지만, 매일 태양을 삼켰다가 다시 토해내는 거대한 소금의 호수는 신화가 숨 쉬고 있는 청색(靑色) 수채화가 된다. 남해는 그런 까닭에 자기도 모르게 예향(藝鄕)이 된다.

명품으로 몸을 두른 도시의 건축학이 남루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어촌이지만, 섬 그늘에 뿌리를 내린 마을은 지나간 사연을 가슴에 묻고 등대가 전하는 기쁜 소식만 기억하는 순박한 청년이 된 채 외지 손님을 맞이한다. 그래서 썰물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들은 바다의 잔해가 아니라 바다의 청량한 인내다. 내일이면 도시로 돌아가는 나그네의 눈빛은 바다의 눈망울을 퍽이나 닮아 있으리라.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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