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된다."
생전 카프카가 남겼던 어록이다. 여기에서 주어를 음악으로 바꿔도 그 의미에는 변함이 없을 거라고 믿는다.
갈수록 위축돼가고 있는 주류 록계에서 도끼처럼 듣는 이들을 강렬하게 내리치는 음악을 오랜만에 만났다. 블랙 키스의 통산 7집 앨범 '엘 까미노'다.
비평가란 족속은 대개 걸작과 명반, 문제작 같은 (자기만) 에이스(라고 착각하고 있는) 카드를 손에 쥐고서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이 최상급이 주는 유혹과 착시 효과를 이겨내야 한다. 거기에 굴복하는 순간, 해당 아티스트와 작품의 가치도 더불어 하락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런 앨범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바야흐로 로큰롤 위기의 시대에 이 미국 출신의 2인조 밴드는 로큰롤이 앞으로 생존할 수 있는 비법 중 하나를 시범한다. 바로 중언부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자꾸만 덩치를 부풀려서 키우려 하지 말고, 핵심을 정확하게 찔러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장악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최단거리로 달려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법과도 같은 흡수력과 화제의 뮤직비디오로 빌보드 록 차트를 제패한 첫 싱글 '론리 보이'가 이를 대표한다. 일단 편성부터가 달랑 2명. 밴드로서는 최소 아닌가.
다른 수록곡들에서도 블랙 키스는 일렉트로닉과 힙합에 경사된 현 대중음악 세태의 반대 방향으로 뻗어있는 역린(逆鱗)을 품어내면서도 단호히 제 갈 길을 가는 자의 자부심 같은 것을 보여준다.
2001년 데뷔한 이후 거의 10년 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블루스 록말고 곁눈질을 해본 적이 없다.
주변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영민함도 발휘해, 이 작품에서는 젊은 프로듀서 데인저 마우스의 조언 아래 댄스 그루브를 오리지널 블루스 록에 결합시켰다. 그들의 블루스가 전혀 고루하지 않고, 도리어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를 위해 묘하게 섹시한 여성 백 보컬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주술적이고 선동적인 황홀경을 제시하는 것이 로큰롤의 특권이라면, 몇 개월 동안 이 앨범만큼 그 특권을 호방하게 누렸던 경우도 드물다. 해외 여러 매체가 보낸 찬사처럼 블랙 키스는 시대사적 중심의 밖에 위치한 예외성으로 근원적인 그 무엇(블루스)를 혁파해냈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빈티지 록, 강력한 로큰롤 타격으로 당신의 얼어붙은 마음을 시원하게 내리쳐줄 것이다. 정말이지, 목욕탕 따로 갈 필요가 없다. /배순탁(음악평론가·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