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전 한국 여성 최초로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유학을 떠난 이희숙(62) 씨. 핀란드인 외교관 남편을 따라 세계 곳곳을 누비다 몇 년 전 헬싱키에 정착했다. 최근엔 북유럽 문화 전도사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위원으로 한국과 핀란드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지막 꽃샘추위가 시샘을 부린 25일 서울 광화문 메트로 신문사 사옥의 카페 아토에서 그를 만났다.
"잘 지냈어요?" 지난해 남편인 마르쿠 니니오야 핀란드 기후변화 대사와 함께 인터뷰를 한 뒤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보랏빛 카디건에 붉게 상기된 표정이 예순을 넘긴 나이를 잊게 했다.
이씨는 며칠 전 전북대에서 '유네스코 등재를 통한 비빔밥의 세계화'를 주제로 강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식을 프랑스 미식 문화나 지중해 음식처럼 유네스코 목록에 올리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며 "전 세계에 한국의 맛과 멋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북유럽의 하얀 눈과 자작나무가 그려 있는 표지 위에 '나의 스칸디나비아'라는 제목이 선명했다.
"반평생을 보낸 북유럽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썼어요. 사우나와 보드카를 즐기는 핀란드 사람들, 입센과 뭉크의 나라 노르웨이, 사랑스러운 이기주의자의 나라 스웨덴,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아이슬란드, 안데르센의 동화 같은 나라 덴마크."
우리나라 최초의 스칸디나비아 지역 유학생이었던 이씨는 노르웨이 국립예술 디자인 대학에서 조각과 그래픽 디자인 등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북유럽을 유학지로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하자 "그리그의 '솔베이지 송'이 흘러나오는 북구의 매력에 반해 1975년 노르웨이로 건너갔다"는 낭만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북유럽은 자연 경관이 빼어나고 사람들은 소박해요. 자연을 닮았어요. 축제 때는 정열적이고요. 여름 백야 축제 땐 애 어른 할 거 없이 밤새 영화를 보고 춤을 춰요. 젊은 시절에는 나도 인기가 참 많았어요. 남자들이 줄을 섰죠. 70~80년대만 해도 북유럽에서 아시아 여자를 만나는 건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웠거든요."
북유럽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역시 세계 최고의 복지 제도 아니냐고 묻자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 그대로라고 했다. 이씨는 무상 교육, 실업 수당 등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최대한 이용하는 북유럽 사람들을 '사랑스러운 이기자'라고 표현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타인의 대한 배려도 깊어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젊은 시절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북유럽의 다양한 사회 지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특히 노르웨이 첫 여성 수상, 세계 최초의 여성 잠수함 함장 등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여성 리더들을 다수 만났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 청년들이 삶에 도전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부딪히고 실패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찾으세요. 경험만한 자산이 있나요? 재능을 발견하면 한눈팔지 말로 그 길로 나아가세요. 친구 따라 강남 가지 말고. 북유럽으로 유학을 와도 좋지요. 지식은 인터넷에서 찾고, 지혜를 찾고 싶다면 이곳으로 오세요. 백야 축제 즐길 준비 되셨나요?"
/조선미기자 seonmi@metroseoul.co.kr 사진/도정환기자 dore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