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편제'는 1990년대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넘겼다. 소리를 찾기 위해 전국을 방랑하는 소리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뮤지컬 역시 영화의 스토리를 거의 그대로 따르지만, 소리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 유봉과 록 음악에 매료된 아들 동호를 대립시킨다. 판소리를 소재로 하지만 판소리로 풀어가진 않는다. 판소리가 작품의 가장 중요한 소재이긴 하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윤일상이 작곡한 가요와 록 음악이다.
전국을 떠돌며 소리 공부를 하는 유봉과 의붓남매 송화와 동호의 여정은 사계절 풍경의 영상을 흘러가게 둔 회전 무대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소리를 찾기 위한 유봉의 집착이 강렬하게 표현된다.
유봉은 갖은 멸시와 모욕을 받으면서도 그 한을 삭여 소리로 만들어야 한다며 남매에게 고된 삶을 강요한다. 동호는 그런 아버지를 부정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소리(록)를 찾아 떠나지만 송화는 그런 아버지를 믿고 진짜 소리를 찾기 위해 소리 여행을 계속 한다.
그러나 그런 송화에게 돌아온 것은 실명이라는 충격적 사건이다. 유봉은 애끓은 소리를 끌어내기 위해 송화의 멀쩡한 눈을 멀게 한다. 자신이 눈 멀었음을 깨닫고 한을 토해 내는 송화가 절규하는 장면은 충격적인 사건과 함께 강한 인상을 남긴다.
소리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희생을 강요하고 감수하는 아버지 유봉과 그런 아버지에 대항해서 록 그룹으로 성공하는 동호의 대립은 이젠 더 이상 주류가 될 수 없지만 긴 생명력으로 남아있는 전통과 대중들의 취향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트렌드한 예술의 대립으로 확대 제시된다.
오랜 시간 갈고 닥은 소리의 절정은 마지막 판소리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유봉의 죽음 이후 송화는 자취를 감춘다. 송화를 찾던 동호는 어느 시골에서 소리를 해주고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만나 소리를 청한다.
벼락같이 쏟아지는 일성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거칠게 치솟지만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고음으로 애를 끊는 송화의 '심청가' 한 자락은 그동안 유봉이 찾아 헤맸던 소리의 정체를 눈앞에서 확인시켜준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얻을 만한 가치 있는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서서히 회전하는 무대와 조명 효과가 총동원돼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을 감동적으로 만들어주지만 배우의 역량이 없이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장면이다. 필자가 본 날, 송화 역의 이자람은 혼신을 불사르는 소리로 오랜 시간 예인이 갈고닦은 진수를 보여줬다.
이 마지막 장면만으로도 '서편제'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22일까지 유니버설 아트센터. /박병성 '더 뮤지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