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목공예 디자이너 에른스트 갬펄(Ernst Gamperl·47)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28일까지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갤러리 LVS에서 열리는 개인전은 그의 최근작 100여 점이 나들이하는 자리다. 나무의 결을 통해 태초의 자연을 말하고 싶다는 갬펄과 잠시 예술적으로 교감했다.
◆ 17세때 나무와 첫 인연
17세때 입학한 가구 제작 학교에서 나무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5년 가까이 공부하면서 '나무는 살아 있다'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진리를 깨우쳤다. 틀에 얽매인 가구제작 작업이 싫어 독립하게 됐고, 항상 가슴 속에 맴돌던 자연과의 조우에 대해 집중했다.
이후 1992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열린 세계적 권위의 환경디자인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기억이 생생해요. 제 목공예 작품을 접한 평론가들은 어떻게 나무로 이런 작업이 가능한지 물어오고 감탄사를 연발했죠. 대학의 정규교육을 거부하고 독학으로 공부해서 그런지 더 주목을 받았어요."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리며 동양적인 감성까지 머금은 작품에 유럽인은 열광했다. 이후 각종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휩쓸었고, 현지 목공 예술의 패러다임까지 바꿨다.
◆ 불교 철학서 탐독…작품에 영향
그의 작품은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한국의 자기를 닮아 있다. 올리브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은 조선의 백자와 비슷하고, 오크 나무를 활용한 작품은 항아리를 보는 듯하다. 우리 선조들은 선반 위에 진흙을 올려 도자기를 빚지만 갬펄은 나무를 깎아 만든 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우리의 도자기처럼 조그마한 입구에서 시작해 볼록한 몸통까지 나무의 두께가 일정하고, 결이 그대로 드러난 점이 놀랍고 신기하다. 특히 벌레가 갉아먹은 자국까지 그대로 작품에 담아낸다.
"동양의 정서를 좋아해요. 특히 불교 철학은 서적을 통해 여러 번 탐독했죠. 제 작품이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를 띠는 것도 동양의 윤회 사상과 가깝다고나 할까요."
초기 작품들은 정확도가 높은 기교와 빈틈없는 디자인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원목 자체의 형태와 표면을 이용해 고유의 아름다움을 매혹적으로 이끌어낸다.
또 재료를 구하기 위해 살아있는 나무를 베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뿌리가 뽑혔거나 바람에 부러져 생명이 다한 원목만을 사용한다. 완성된 작품 바닥에 나무의 나이를 새겨 넣는 것도 자연을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희귀하고 이국적인 나무들을 찾았지만 지금은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단풍나무와 너도밤나무, 올리브나무 등을 선호해요. 나무와 대화를 하면서 지금의 작업 형태를 갖추기까지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죠."
◆ 전시 작품 판매…소장 기회소갤러리 대표이자 건축 디자이너인 마영범씨는 갬펄의 작품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를 내렸다.
"갬펄은 국내에는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이미 유럽과 일본에서 목공예 디자이너로 가장 큰 명성을 누리고 있어요. 돌아가신 조지 나카시마가 목공예로 예술적 경지를 이뤘다면 현존하는 예술가 중에서는 갬펄이 근접해 있지 않나 싶어요. 변형없이 나무를 일정하게 깎아내고 나무의 결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에 놀랍기만 할 따름이죠."
최근 가야금과 거문고에 관심을 둔 마씨는 "가야금은 5~6년이 지나면 나무가 변질되고 균열이 생겨 버려야 하는 데 갬펄을 통해 변형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힌트를 얻었다"며 기뻐했다.
갬펄은 국내 전시 이후 런던 콜렉션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전시를 이어간다. 여름에는 이탈리아에 위치한 작업실을 독일 뮌헨으로 옮길 계획이다. 이번 전시 작품은 판매도 돼 국내에서 갬펄의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던 애호가들에게는 절호의 찬스가 될 듯 싶다. 문의:02)3443-7475 사진/도정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