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나(33)는 울보처럼 보이는 요즘이 너무 싫다. 원래 공식석상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성격이지만, 다음달 3일 개봉될 '코리아'를 알리는 자리에만 가면 어김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그는 "이 영화를 말할 때 사람들이 건드려선 안 되는 대목이 내게 있다. 그 부분만 얘기하면 '멘탈 붕괴' 현상이 찾아온다"며 역시나 눈시울이 젖기 시작했다.
다큐처럼 생생한 감동 재현
아킬레스건이란 다름아닌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극중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북 단일팀이 여자 단체전에서 만리장성 중국을 꺾고 기적처럼 우승을 거머쥐는 장면이다.
북한 에이스 리분희를 연기하는 배두나는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실제 선수보다 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환희를 만끽한다. 당시의 경기를 보지 못했던 관객들에게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제게 연기란 그냥 영화속 인물이 되는 것이죠. 촬영 때 팀 동료들한테 진짜로 미안했어요. 저 때문에 중국에게 지면 어떡하나 싶어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어서 빨리 복식에서 이겨주마' 다짐했죠. 정신줄을 놓고 연기한 모습을 나중에 모니터로 확인하고 조금 쑥스럽기도 하더라고요."
촬영이 끝나고 여섯 달후 포스터를 찍을 때도 비슷한 증상에 시달렸다. 오랜만에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카메라 앞에 서자 맞은 편에 숙적인 중국의 덩야핑이 보였다. 물론 환영이었지만, 절로 라켓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눈에 핏발이 섰다. "한동안 잊고 살던 덩야핑이 눈 앞에 다시 나타난 느낌이었다. 표정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알고 보면 스포츠 3종 철녀
초등학교 시절 탁구부를 경험했다. 탁구란 소재가 '코리아'를 선택하는데 60% 정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살짝 안심했던 게 문제였다. 영화속 리분희는 왼손잡이에 셰이크 핸드 타법을 구사한다. 오른손잡이인 배두나는 펜 홀더로 탁구를 배웠다. 실제 주인공인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을 선생님 삼아 백지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발톱이 빠질 정도로 강훈련을 한 이유다.
이제까지의 출연작들을 살펴보면 은근히 몸 쓰는 작품들이 많다. '굳세어라 금순아'에선 배구선수 출신의 주부를, '괴물'에선 양궁선수를 각각 연기했다. 정적인 이미지와 동적인 캐릭터가 묘한 충돌을 일으키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평소 운동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운동선수를 동경하는 마음이 은근히 있는 것같아요. 실은 '괴물' 때도 남주를 양궁선수로 설정하자고 제가 먼저 봉준호 감독님에게 제안 드렸어요. 극단적인 캐릭터를 선호하지 않는 성향이 많은 영향을 미치죠. 중화돤 느낌의 양면성을 지닌 인물이 좋아요."
극중 북한팀들과 '절친'
작품에 푹 빠져 사는 성격은 인간관계마저 바꿔놓는다. '코리아'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후배들이 요즘 가장 친한 동료들이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모두를 불러모아 맛집을 돌아다니며 수다를 떨었다. 직장 사람들과 휴일만큼은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는 샐러리맨들의 불문율이 통하지 않는 그다. "지방에서 촬영하다가 서울로 오면 일정 맞는 친구들이 '코리아' 출연진밖에 없어요. 유순복 역의 한예리를 비롯한 여러 후배들과 친자매처럼 지냈어요. 영화속 끈끈한 팀워크가 실생활로 이어졌다고나 할까요."
개봉을 앞둔 지금, 단 30분만이라도 리분희를 실제로 만나길 희망한다. 북한에서 인민 체육영웅으로 추대된 리분희는 93년 이후 국제무대에서 자취를 감춰, 당시 복식 파트너였던 현정화 감독과도 20년 가까이 소식이 두절된 상태다.
배두나는 "리분희 선수를 만나면 영화를 보셨는지, 보셨다면 제 연기에 만족하는지 꼭 묻고 싶다. 정말 뵙고 싶다"며 다시 눈가가 촉촉해졌다. 사진/김도훈(라운드 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