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1976년)에 처음으로 국적을 얻었습니다. 제 첫 국적이 왜 한국이 아닌 러시아가 돼야 합니까."
지난달 25일 고국을 방문한 러시아 사할린 한인 2세 임용군(59) 사할린주한인협회장의 말이다.
임 회장은 러시아 극동의 섬, 사할린에서 태어나 무국적자로 자랐다.
"무국적이란 조건은 대학 입학이나 모든 생활에 걸림돌이 됩니다. 운동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도 공식 대회에 나갈 수 없어요. 사할린 섬을 벗어나는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죠."
임 회장의 가족이 무국적자의 삶을 산 것은 1942년 임 회장의 부친이 동토의 땅 사할린에 첫 발을 딛으면서 시작됐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사할린을 손에 넣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이용하기 위해 1945년 8월 15일 해방 때까지 조선인 4만3000여명을 강제이주시켜 노역에 동원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일제는 자국민을 본토로 송환했지만 패전국에 속한 조선인은 사할린에 버리다시피 남겨뒀다.당시 한인들 대부분은 곧 귀국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무국적으로 남았다.
일본과 러시아, 심지어 고국인 한국은 이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상에서 사할린 한인이 빠졌다는 점이 단적인 예다.
이들은 1992년부터 이뤄진 국내 영주귀국 사업으로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할린 한인 1세(1945년 8월 15일 이전 국외 이전 및 출생자)에 속하는 영주귀국자는 일본 적십자 등의 생활 지원을 받는다.
◆생이별 안하려 귀국 포기
한인 2~3세가 제외돼 가족과 생이별 해야하는 영주 귀국 대신 사할린에 남은 한인 1세대 1500여명은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임 회장은 "이런 불합리한 점을 바로잡기 위해 '사할린 한인 지원 특별법' 이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고국 방문도 이 법 통과를 호소하기 위해서다.
사할린 특별법은 사할린 잔류를 선택한 1세대에게 영주귀국한 1세대와 동일한 혜택을 주는 동시에 한인 2~3세를 지원하도록 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할린 특별법은 17·18대 국회에서 두차례 발의됐으나 모두 법제화 되는 데는 실패했다.
임 회장은 "지난 17·18대에도 국회에 발의됐지만 실패했지만 사할린 한인 단체들이 특별법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힘을 합쳤으니까 19대 국회에서는 꼭 통과시킬 수 있지 않겠냐"며 기대를 걸었다.
"사할린 동포든 한국 사람이든 같이 떳떳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 같은 한국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