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영화·드라마의 행복한 '동거'가 늘어나고 있다. 소설을 극화한 영화와 드라마가 올 상반기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소설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영화는 다시 소설의 인기를 등에 업는 '상부상조'의 사례가 대중 문화계의 트렌드로 부각되고 있다.
◆ 베스트셀러 톱10 세 편 포함
지난달 마지막주 교보문고가 집계한 소설 베스트셀러 순위 톱10에는 영화로 이미 공개됐거나 상영중인 작품이 세 편이나 포함돼 있다.
지난주 개봉된 '은교'가 당당히 1위를 차지했고, 상영이 끝난 '화차'와 '헝거게임'이 각각 6·9위에 자리잡았다.
50위권으로 확대하면 더 많다. 3일 개봉되는 '백설공주'가 20위에, 지난해 말 개봉됐던 '밀레니엄' 시리즈가 30위에 각각 올랐다.
드라마의 원작 소설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재 SBS에서 주말연속극으로 방영중인 '바보엄마'와 인기리에 종영된 '해를 품은 달'은 각각 10위와 35위에 자리했다.
◆ 작품 인기 영화 홍보용 이용 급증
이들 작품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수 년전 출판됐지만, 개봉과 방영 시점에 맞물려 최근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원작의 인기를 영화 홍보에 이용하는 추세도 급증하고 있다. 영화 흥행이 소설 판매에, 소설 판매가 다시 영화 흥행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은교'의 투자와 배급을 맡은 롯데엔터테인먼트는 롯데시네마에서 원작 소설을 할인한 가격에 판매한다. 정상가 1만2000원에서 2000원 싸게 구입할 수 있으며, 관람객에 한해서는 1000원을 더 할인해 준다.
롯데시네마 측은 "영화와 소설을 한 자리에서 만나고 싶어하는 관객들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라고 밝혔다.
영화계 일부에선 출판계가 영화의 인기에 무임승차하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한다. 소설 원작의 영화를 수입했던 한 영화사는 "개봉전 출판사에 공동 마케팅을 제의했는데 단칼에 거절하더라"면서 "막상 개봉되고 나니 영화 포스터와 사진을 앞세워 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조금 씁쓸했다"고 귀띔했다.
반면 출판계의 한 관계자는 "원작을 재미있게 본 예비 관객들의 수를 생각하면, 영화계는 별다른 홍보 비용없이도 사전 홍보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 원작·영상물 비교 사이트 넘쳐
원작과 영상물을 비교 평가하는 의견이 관련 사이트에 넘쳐나고 있다. 원작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대개 영상물이 소설에 비해 불친절하다는 쪽인데 반해, 영화를 먼저 본 관객들은 소설보다 영화가 더 이해하기 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활자가 영상으로 바뀌면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엇갈린 해석인데,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은교'와 '헝거게임'은 독자와 관객으로부터 두루 호평을 얻었다. 여주인공의 약혼자 비중을 늘리고 시대적 배경과 결말부를 한국식으로 손질한 '화차' 역시 새로운 해석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독자들은 물론 원작자인 미야베 미유키 여사로부터도 들었다.
박범신 작가의 '은교'를 영화화한 정지우 감독은 "원작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원래의 이야기를 영상 문법에 걸맞게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소설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원작과 영화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