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문대를 졸업한 후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에 다니던 김성미(35·가명·여)씨는 지난해 다시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다니던 회사 팀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자 부모가 대학원이라도 다니라고 권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이제 시집갈 나이"라고 재촉하지만 김 씨는 결혼 생각이 전혀 없다. 경제 형편이 넉넉한 부모가 "좋은 사람 나타나기 전에는 결혼할 필요가 없다"며 막내딸인 김 씨의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대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올해 초 국내에서 잔잔한 흥행을 일으켰던 일본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는 이혼 후 부모 집에 얹혀사는 30대 여 주인공이 나온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는 온가족이 다시 함께 살기를 원하지만 주인공은 음악에 빠져 생활력 없는 남편 대신 부모와 사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자녀들은 가족이 합치는 '기적'을 바라지만 주인공은 생활고를 걱정해야 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한·일 양국이 '캥거루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취직하지 않고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을 뜻하는 '캥커루족'이 한국은 100명 가운데 7명, 일본은 6명 가운데 한 명꼴로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캥거루족 때문에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저출산이 심화되는 등 사회가 병들고 있다는 주장이 양국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1990년대부터 '기생 독신'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던 일본은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2일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한 총무성 추계에 의하면 35∼44세의 연령대에서 6명 가운데 한 명꼴인 약 295만 명(2010년 현재)이 미혼인 채 부모와 동거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같은 연령대의 16.1%에 해당하며 1990년의 112만 명, 2000년의 159만 명에서 2~3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이 연령대의 기생 독신은 고용이 불안정해 완전실업률이 11.5%로 같은 세대 전체 실업률(4.8%)의 2배 이상이었으며 비정규직도 11.2%였다. 20∼34세 연령대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미혼자는 1064만 명에 달했다.
'기생 독신'이라는 용어를 만든 주오 대의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는 "1990년대에 문제가 됐던 20∼30대의 캥거루족이 중년이 돼서도 부모에 의존하는 생활을 계속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자립하지 못하는 미혼자가 증가할 경우 저출산이 가중되고, 생활보호대상자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답습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놀고먹는 '캥거루족' 경고등이 켜졌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15~34세 청년 인구 가운데 일을 하지도 않고 구직 활동도 포기한 숫자가 100만8000명에 달한다. 전체 청년 인구는 2003년 1475만명에서 2011년 1346만명으로 129만명이 줄었지만 캥거루족은 같은 기간 75만1000명에서 100만8000명으로 25만7000명이나 증가했다. 청년 100명 가운데 7.5명이 캥거루족에 속한다는 이야기다.
남재량 노동연구원 박사는 "캥거루족의 평균 연령이 일본처럼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며 "젊은이들이 심신장애도 아닌 상태에서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은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신호"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