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윤종신이 잡지 발행인으로 변신했나 싶었을 것이다. 그가 매달 선보였던 '월간 윤종신'을 두고 하는 얘기다.
1990년 그룹 공일오비의 객원가수로 데뷔했으니, 어느덧 22년차 중견가수. 어린 친구들에게는 MBC '황금어장 - 라디오스타'의 진행자로 더 익숙하겠지만, 적어도 90년대에 윤종신만큼 막강한 히트 퍼레이드를 펼쳤던 가수는 그리 많지 않다.
공일오비 시절 부른 '텅 빈 거리에서'를 시작으로 '너의 결혼식' '오래 전 그날' '부디' '내 사랑 못난이' '환생' '길' 등의 곡들을 줄줄이 차트 꼭짓점으로 견인하며 발라드 연금술사로 당대를 풍미했다.
뮤지션로서 갖춰야 할 으뜸 덕목은 '우직함'에 있다고 믿는다. 매달 한 곡 이상의 신곡을 반드시 발표한다는 '월간 윤종신' 기획은 그래서 윤종신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약속으로서 기능한다.
그러니까 예능인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되는 순간에도 결코 음악에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풀이된다. '월간 윤종신'은 지난해부터 계속돼 왔고, 얼마 전 박정현이 부른 '도착'이 각종 차트 상위권에 오르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의 과거 음악세계를 돌이켜보면, 그 주제가 일관되게 유지돼 왔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도 "찌질계의 갑이었다"라고 밝혔던 윤종신만의 '연애 패배주의'는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해 히트의 가시권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렇듯 '이별 노래의 끝판왕'으로 막강한 아우라를 뽐냈던 그 시절은 분명히 대중 가수로서 윤종신 인생의 '리즈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2000년대 이후 윤종신의 대중적인 보폭은 90년대와 비교해 상당히 축소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예전과 같은 갈채와 환호를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 대신 음악적인 역량만큼은 세월이 흐른 만큼 안정적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아마도 여기에는 결혼이라는 극적인 전환점이 강력하게 작용했을 것인데, 이를 통해 그는 음악과 가사 모두에서 너비와 깊이를 동시에 일궈낸다. 발라드와 이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여러 장르를 바탕으로 삼아 인생을 노래하고 성찰한다.
아마도 '월간 윤종신'은 거대한 포부가 아닌 조그마한 재출발이었을 것이다. 찬란했던 지난 날을 뒤로 하고 지금 자신이 당면한 바로 그 자리에서 음악과 정직하게 1대1로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더 이상 '너의 결혼식'이나 '오래 전 그날' 같은 슬픈 발라드를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봄이 지나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이 오듯, 뮤지션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러운 변화다.
그 변화의 과정을 어른스러운 담담함으로 노래하는 그의 현재, '월간 윤종신'은 찬란했던 과거만큼이나 그의 팬들에게 그리고 한국 가요계에 소중한 자산으로 기록될 것이다. /배순탁(음악평론가·MBC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