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비정부기구(NGO)로서 접근하기 힘든 요인이 있습니다. 국회 차원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대북정책에 대한 활발한 소통을 하고 싶어요."
19대 국회의 새 얼굴 하태경(부산 해운대·기장을) 당선인은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1986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그는 선배인 김세진과 이재호가 전방입소 거부시위를 벌이던 도중 분신자살한 사건을 목도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서 통일운동을 벌이다가 89년과 91년 두 번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80~90년대 통일운동의 중심에 섰던 문익환 목사와 함께 '통일맞이'에서 함께 활동했다.
그러나 94년 문 목사의 급작스런 서거 이후 건강이 악화돼 고향 부산으로 낙향해 학업을 다시 시작했다. 통일운동을 하던 시절 느꼈던 국제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외국어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영어공부를 해 부산 통번역협회장까지 지냈다.
이후 고려대 국제대학원에 진학해 국제협력 분야 석사와 중국 지린대학교 대학원에서 세계경제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그의 인생의 행로가 크게 뒤바뀐 계기는 유학시절 만난 탈북자들이었다. 이들에게 북한 내 인권과 실상을 접하게 된 그는 북한 내 민주화를 위한 인권운동가로 변신해 대북 단파 라디오방송인 열린북한을 설립한다.
"처음 북한 인권을 거론했을 때 주변의 시선은 냉담했습니다. 수년 간 활동을 벌이면서 이제 저를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한 분 두 분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통일운동을 할 때는 북한에 대한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분단모순에만 집착했다고 자평했다.
"북한 민주화는 좌우의 이념적 시선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예요. 인권은 보편적 가치입니다. 정치권이 북핵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20여 년간 추구해왔던 정책들이 결국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북핵문제는 인권과 함께 가야합니다."
그는 국제적인 역학관계에서 중국의 지위와 위상을 다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야와 좌우를 막론하고, 대미·대일 채널은 풍부하지만 중국에 대해서 많은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런데 비해 한중간의 외교채널이나 협력체제는 너무 구축이 안돼 있습니다."
하 당선인은 19대 국회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추진할 생각이다. 경제를 전공한 만큼 정무위나 지경위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북한 문제와의 끈을 놓지 않고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혁신과 더 많은 쇄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의 주도권은 관이나 기업이 갖고 있었죠. 현실 정치에서 이들에 대한 이익을 편향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많은 부분을 잃었다고 봐요. 공공선의 측면에서 이제 시민과 민간, 지역이 변화를 주도해야 하고, 정치 영역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이끌어내고 지원해야 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펼치는 마을공동체 사업에서도 많은 힌트를 얻습니다."
그는 지역구인 해운대와 기장이 부산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역구에서부터 풀뿌리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제와 환경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