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들의 게스트 섭외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다 못해 이젠 폭발 일보 직전이다. 초대 손님들의 폭이 인기 연예인에서 정치인과 운동선수, 해외 셀레브리티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 인사로 확대되면서, 제작진은 저마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신선하면서도 따끈따끈한 게스트를 출연시키는데 온힘을 쏟아붓고 있다
▶ 국적도 정치색도 전혀 가리지 않아
케이블 채널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CNN의 인기 앵커 앤더슨 쿠퍼 등 세계적인 셀레브리티들을 출연시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최근 가족 여행을 위해 사적으로 한국을 찾았던 헐리우드 미녀스타 제시카 알바도 이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tvN 정해상 시사 콘텐츠국 책임 프로듀서(CP)는 17일 거물급 국내외 초대손님들의 섭외에 들인 노력을 묻는 질문에 "의외로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100회 특집에 출연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시작으로 앞서 출연했던 게스트들의 명단을 알려주면 "놀랍다"는 찬사와 함께 흔쾌히 섭외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예상보다 많았다는 설명이다.
정 CP는 "물론 해외 유명인사들을 섭외할 때면 성명권과 초상권에 관련된 조항이 매우 까다로워 애를 먹는다"면서 "이 때문에 섭외를 위해 얼마전 미국 LA에서 만난 또 한 명의 할리우드 스타도 이름을 밝힐 수 없다"고 털어놨다.
화제가 된다 싶으면 이처럼 게스트의 국적은 물론 정치색도 가리지 않는다. 얼마전에는 통합진보당 사태의 숨은 핵심인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가 지상파의 여러 시사 토론 프로그램들을 제쳐놓고 출연해 눈길을 모았다.
정 CP는 이 당선자의 구체적인 출연 경로를 밝히는 대신 "23년의 방송 내공을 자랑하는 MC 백지연을 대화 상대로 높이 평가한 것같다"고만 말했다. 일종의 '영업 노하우'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재 섭외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게스트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꼽았다. "언젠가 한 마디 해야 할 분이니 섭외 중"이라며 "계속해서 문서와 사인을 보내고 있지만 아직 답이 없다"고 짧게 답해 역시 구체적인 섭외 경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 최소 두달이상 접촉 ‘끝없는 러브콜’
지상파에서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가 화려한 게스트 명단을 앞세워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의원을 시작으로 차인표·이효리·박진영·양현석 등이 나와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안겨줬다.
SBS 이창태 예능국장은 "가치관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주고받는 포맷이 게스트의 마음을 움직이는 첫 번째 비결"이라며 "최소 두 달 이상의 기간을 두고 게스트와 접촉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3월 2회에 걸쳐 방송됐던 차인표 편은 최영인 책임 프로듀서의 끈질긴 구애로 제작이 성사된 케이스였다고 한다. 수 년전 '야심만만' 시절부터 그를 점찍었던 최 CP는 차인표의 도서 출간회와 사인회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차인표는 자신의 출연분이 중학교 교재로 선정될 만큼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
KBS2 '승승장구'는 MC 김승우의 폭 넓은 인간 관계와 부드러운 진행이 프로그램 선택에 까다로운 유명인들을 제 발로 걸어오게 만든다. 그의 실제 아내인 김남주와 KBS2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부부로 공연중인 유준상이 게스트로 나선 8일 방송은 시청률 9.1%(AGB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로 전 주보다 3.2% 포인트 상승했다.
김미연 작가는 "방송에 자주 출연하지 않는 게스트일수록 재치 넘치고 화려한 진행자보다는 '굿 리스너'를 선호한다"면서 "김승우 씨는 자신이 인기 연예인이므로 상대를 편안하게 배려한다. 초대손님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인기 비결을 전했다.
물론 '승승장구'도 다른 토크쇼처럼 제작진의 끊임없는 구애는 기본이다. 24일 녹화 예정인 인기가수 보아에 대해서는 " "몇 번을 거절해도 계속해서 출연을 부탁하니 결국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밝혔다.
▶ “게스트 의존 제작풍토 제살 깎기”
이들 프로그램과 달리 세시봉 등을 앞세워 한때 높은 인기를 누렸던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는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 14일 방송된 '김장훈 굿바이쇼 스페셜'은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는 김장훈과 싸이가 출연했지만, 식상하다는 평가속에 시청률 5.8%에 그치며 같은 시간대 꼴찌로 밀려났다.
4~5명의 친분있는 게스트들을 활동 시기와 분야 등 한 개의 카테고리로 묶는 방식이 이젠 더 이상 신선하지도 않을 뿐더러 구태의연하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일부 네티즌은 "계속되는 파업으로 채널 자체에 대한 기대가 떨어진 탓"이라고 지적중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토크쇼가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을 초대하는 것은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반영"이라며 "폭넓은 계층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욕구가 자연스럽게 토크쇼를 통해 해소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요일별로 포진한 토크쇼들이 게스트 섭외에만 매달리는 제작 풍토는 우려했다. "요즘 토크쇼는 단기간에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다 보니 게스트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서 "이것은 결국 제살 깎아먹기다. 예능과 시사의 장르 교배나 연예인과 일반인이 함께하는 퓨전 토크 등 다채로운 포맷 시도가 필요하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