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그 수요가 줄어들었지만, 창작 뮤지컬 중 유독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명성황후'나 '해상왕 장보고' '이순신' 등 역사적 인물을 그린 작품부터 동학 운동을 다룬 '징게맹게 너른들'까지 역사는 뮤지컬의 중요 이야깃거리였다.
신라 시대가 시대적 배경인 '풍월주'는 역사적 사실에 집중해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르다.
신라의 여성 귀족들이 드나드는 남자 기방 운루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새로운 설정이긴 하지만 신라가 여왕이 존재했을 정도로 성적 평등이 이뤄졌고, 성에 대해서도 비교적 개방된 사회라는 점에서 작품의 개연성이 있다.
운루에 있는 남자 기생들을 풍월이라고 불렀는데, 바람과 달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 운루에 모여들게 된 이들을 은유한다. 실제 풍월주는 화랑의 우두머리라는 뜻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정처 없는 삶의 남자 기생이라는 새로운 의미로 사용된다.
운루의 최고 풍월인 열과 사담은 우정 이상의 관계다. 열이 모시던 진성여왕이 열의 아이를 갖게 되면서 갈등을 빚는다. 역사적 공간으로 이동시켜 현실의 틀에서 벗어나지만,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집중한다.
열과 사담의 사랑은 동성애적 사랑이면서 감춰진 사랑이다. 표현하지 못했던 둘의 사랑은 절대 권력을 가진 진성여왕이 개입되면서 파괴되고 만다.
전형적인 BL(Boys Love) 장르이고 BL 팬을 위한 작품이지만 어딘지 아쉽다. 열과 사담이 왜 사랑하는지, 또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표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죽음을 받아들인다.
사랑을 죽음으로 증명하려 하지만, 먼저 죽음을 결심하는 단계가 설득력을 주지 못했다. 소극장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로맨스와 성적 판타지를 기대하게 만드는 기방 운루를 표현한 무대 세트는 공간적인 분할에만 충실할 뿐 전혀 그런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기존 역사 뮤지컬과 다르게 접근하는 방식은 긍정적이었지만, 다른 접근 이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평면적인 인물들을 열연했던 배우들의 노력만이 빛났다. 7월 29일까지 컬처스페이스 엔유. /박병성 '더 뮤지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