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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저도 주세요" 순식간에 동난 대박

[창간 10주년 특집] 10년차 배포요원 김화순 김영순씨 잊지못할 2002년 5월 31일

▲ 메트로신문 사옥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영순(왼쪽)· 김화순씨 /도정환 기자 doremi@



한일 월드컵 개막일이었던 2002년 5월 31일 금요일 아침 7시.

10년째 배포요원을 하는 김화순(64)씨는 메트로신문 창간일이자 배포를 시작한 그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국내 첫 도입되는 무료신문에 대해 본인조차 생소한데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덜컥 걱정부터 들었다. '한 부도 나눠주지 못하면 어쩌지' '무료라 해서 생활정보지 벼룩시장으로 생각하는거 아닐까'란 겁이 나기도 했다.

메트로신문을 품에 한 가득 안고 7호선 장승배기역 출구 앞에 서자 마자 월드컵 시즌 시청광장 분위기가 느껴졌단다. '저도 주세요' '이게 진짜 무료에요?'라며 신문을 앞다투어 가져가는 것이었다. 세계 최초 무료일간지 메트로신문을 처음 만나는 한국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신문이 모자를 때마다 다시 보충했지만 매번 눈 깜짝할 사이 동이 났다.

"너도나도 신문을 가져가서 정신이 없었지만 덩달아 저도 흥이 났어요."

이른 아침 시간을 활용해 용돈이나 벌어볼까란 마음으로 배포 요원을 시작했지만 신선한 소식을 무료로 건네는 매력에 빠진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인사 잘하는 중학생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고등학교 교복을 입더니 지금은 대학생이 됐더라고요. 미혼이었던 한 여성 독자는 어느날 아기를 업고 결혼해 애도 생겼다며 제게 인사했어요. 10년 동안 매일 아침 얼굴을 보니까 친정 식구처럼 느껴진다네요."

청소년이었던 김씨의 두 아들은 어느덧 건장한 청년으로 자랐다.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을 시킨 것 같아요. 큰아들과 작은아들 터울이 8살로 나이 차가 꽤 있는데. 엄마가 일하러 일찍 나간 동안 큰애가 작은애를 보살펴주고, 둘째는 엄마가 일하는 모습 보면서 낭비 안하는 습관을 들이더군요. 애들이 착하게 자라줘서 고마워요."

1호선 의정부역 배포요원 김영순(53)씨는 10년 동안 깨알같은 노하우가 생겼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출구 파악하기, 시민들과 활기차게 인사 나누며 애독자 만들기, 단골 독자가 자주 다니는 경로 알아두기 등이다.

"출근길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피곤하고 굳어 있잖아요. 저는 '나를 보고 신문을 가져가는 것과 마찬가지다'란 생각에 항상 밝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서 신문을 건네고, 신문을 주고 나서 '수고하세요'라고 한 번 더 인사하면 독자분들도 함께 웃어요."

아침에 잠깐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냐고 치부할 수 있지만 이들은 메트로신문 배포요원이란 열정과 자부심이 넘쳤다. 인터뷰를 마치며 두 사람에게 소감을 한 마디씩 부탁했다.

"10년이 빠르고 재밌게 지나갔어요. 메트로신문을 보는 독자들도 같은 마음일 거에요. 우리나라는 유난히 '원조'를 따지니 원조 무료일간지인 메트로신문은 앞으로도 명성을 지키며 번창할 거라 믿어요.(김영순)"

"맞아요. 다국적 신문이니 세계적인 인지도까지 있어요. 배포요원으로서 힘든 점이 딱 하나 있는데 독자분들이 신문을 안 받고 지나칠 때에요. 독자님! 바쁘더라도 우리를 지나치지 말아주세요!(김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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