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사람을 관찰하는 게 연기에 큰 도움이 됐는데 이제 못하게 됐어요."
배우 이희준(33)이 최근의 인기를 한마디로 표현했다. 연극·영화·단막극을 두루 거치며 다진 탄탄한 내공이 마침내 빛을 발하고 있다.
'넝굴당' 시청률 1위 일등공신
KBS2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시청률 1위 질주를 하는 데에는 천재용(이희준)과 방이숙(조윤희)의 러브 스토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시놉시스 상 주인공 일가를 제외한 '그 외 인물'로 분류됐던 천재용은 드라마의 웃음 포인트를 확실히 책임지는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작가님의 배려 덕분이죠. 의도적으로 말을 더듬고 애드리브를 준비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작가님이 그런 부분까지 감안해 대본에 써주세요. 심지어 조윤희씨랑 실제로 사귀면 어떻겠느냐는 짓궂은 주문까지 하신답니다."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애매한 서울말을 쓰고,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허점이 숭숭 들어나는 면은 실제 모습과 닮았다.
"천재용 보다 제가 조금 진지하긴 하지만 제 안에 그런 면이 있어요. 저도 보수적이고 무뚝뚝하지만 자꾸 속마음을 들키는 남자거든요. 이를 좀 더 유아적으로 풀어보려 하고 있어요."
내공 갖춘 14년차 연기자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연기 좀 하는' 반짝 스타쯤으로 여길 수 있지만, 꾸준히 단계를 밟아 온 14년차 연기자다.
"영남대 화공학과 1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준비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갑상선이 찢어지는 큰 부상으로 면제를 받은 뒤 제 인생이 바뀌었죠. 아무런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우연히 연극단원 모집 벽보를 보고 연기를 시작했어요."
1999년 첫 작품은 아동극 '알리딘 요술램프'였다. 고작 3분만 무대에 오르는 단역이었지만 엄청난 쾌감을 느꼈고, 인생의 목표를 확고히 했다.
집안의 반대를 뒤로 하고 30만원만 손에 쥔 채 상경했다. 연희단 거리패 활동을 겸하면서 연극과 입시를 준비했고, 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했다.
4년간 세 차례 전액 장학금을 포함해 줄곧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고, 뒤늦게 배운 연기의 맛에 푹 빠졌다. 졸업 후에는 문성근·송강호·박철민 등 걸출한 스타를 배출한 극단 차이무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연극 'B언소'를 하고 있을 때 KBS 단막극 책임 프로듀서께서 관람하셨어요. 처음 본 제게 대뜸 '단막극 몇 개 할래?'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저도 아무 생각 없이 '네 개'라고 말했죠. 그렇게 해서 4편의 드라마 스페셜에 출연하게 됐어요."
"한국의 다우니 주니어 꿈"
2010년 '텍사스 안타'를 시작으로 '완벽한 스파이' '동일범'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큐피드 팩토리'를 함께 한 김형석 PD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넝쿨째…'에 출연하게 됐다.
왕성한 연기 욕구는 영화로 뻗어갔다. 처음으로 목돈 1000만원을 손에 쥐게 된 '부당거래'를 비롯해 '심장이 뛴다' '모비딕' '특수본' 등 10편의 장편 영화에 출연했다. '화차'와 '차형사', 가을 개봉 예정인 '환상 속의 그대' 등 올해에만 세 편의 개봉작에 합류했다.
또 장혁·수애 주연의 영화 '감기'의 촬영을 앞두고 있고, 현재 연극 '게이 결혼식' 무대에도 오르고 있다.
"절대 타고난 배우가 아닌 100% 노력파예요. 대본을 느리게 보고, 순발력도 뛰어나지 않죠. 대신 평소에 많이 관찰하고 메모하면서 아이디어를 저장하고 있어요. 지금 이 자리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한 단계씩 성장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유쾌하면서 진중하고, 멋을 아는 한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 이희준은 누구?
생년월일: 1979년 6월 29일
가족관계: 2남 중 장남
출생지: 대구
거주지: 평창동(전세 8000만원 투룸. 전세 3500만원 원룸에서 최근 이사)
신장: 181cm
학력: 영남대 화공학과(98학번 중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03학번)
수상: 2011년 KBS 연기대상 남자 특집단막극상
특기: 복싱·킥복싱·합기도 등 격투기
취미: 메모·독서
감명깊게 읽은 책: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유순호기자 suno@metroseoul.co.kr·사진/김도훈(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