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여정(31)은 얼굴에서 결기가 흐른다는 말에 맨 처음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내 끄덕이더니 "칭찬인 것같다. 열심히 연기한다는 뜻 아니냐"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색다른 경험 위해 미친 듯 도전
그가 욕망으로 허물어져가는 조선 시대 여인 희연으로 출연한 영화 '후궁 : 제왕의 첩'(이하 '후궁')은 개봉일인 6일 하루에만 전국에서 27만1317명을 불러모아 일일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맨 인 블랙 3' 등 쟁쟁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제치고 거둔 성과다.
반응이 좋아 다행이지만 여전히 탈진 상태다. 촬영을 끝내고 수 개월째 '너 사랑받을 자격 있니?' '그래,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아'란 자문자답을 반복하고 있어서다. 어디까지가 재능이고 노력인지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조여정이 지난 시간을 복기하고 반성하는 과정이다.
전작 '방자전'은 뭔가 다르게 보이고 싶어 선택했다면, 이번 작품은 연기의 폭과 깊이를 시험해보고 싶어 골랐다. "인간 조여정이 경험하지 못했던, 앞으로도 경험할 수 없는 사건들이 '후궁'에서 그려지죠. 미친 듯이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출연을 결심했어요."
김동욱 김민준 사이에서 윤활유
촬영장에선 성원대군 역의 김동욱과 권유 역의 김민준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자임했다.
두 남자와 차례로 맨살을 부대껴야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칫 예민해질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편하게 행동했다.
가끔씩 양쪽을 오가며 말을 전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김동욱과 김민준 모두 전형적인 한국 남자들,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무뚝뚝한 성격으로 빚어질 수 있는 약간의 오해들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동욱 씨와 민준 오빠가 상대를 대놓고 칭찬하는 걸 대단히 쑥스러워 하더라. 그래서 내가 대신 전달했더니 한결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벗는 장면에 대한 주위 시선 담담
누구는 수군댄다. '벗는 연기'에 재미붙였다고.
그러나 조여정 본인은 비교적 담담하다. "여배우로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이므로, 그같은 시선을 피할 수 없다면 차차리 편안하고 담대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물론 서운할 때도 있다. 배우 더 나아가 연예인을 바라보는 대중의 변하지 않는 시각이 가끔은 불만이다. "연예인은 '심장에 철조망을 친 존재' 쯤으로 여기는 분들이 계세요. 알고 보면 연예인만큼 상처받기 쉽고 불완전한 사람들도 없는데 말이죠.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와 같이 평가받는다면 칭찬이라 생각합니다."
유쾌한 작품으로 다시 만나요
내면에서 더 긁어낼 게 있을까 싶어 요즘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한 편의 영화에 몸과 마음을 소진하고 나면 언제나 찾아오는 증상이다.
가까운 사람들의 격려가 있어 갑자기 눈물을 흘리곤 한다. 시사회후 "고생했고 잘했다. 네가 자랑스럽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눈시울을 적셨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행복할 수 있어 매일 아침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서른을 넘기며 바뀐 마음가짐이다. 방황했던 20대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당분간 심신을 추스른 뒤 밝고 유쾌한 작품으로 필모그래피의 균형을 맞출 계획이다. 덧없는 욕망의 끝까지 돌진했으므로 이젠 유턴할 차례다. "관객들이 나를 보며 '저 얼굴로 이번에는 뭘 담을까' 궁금해하길 바란다"며 야무진 속내를 드러냈다.사진/김도훈(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