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와 고물가가 지속하면서 이를 이겨내기 위한 소비패턴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IMF 외환위기(1997), 글로벌 금융위기(2008)를 혹독하게 겪은 소비자들은 3~4%대 물가상승률 속에서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는 지혜를 짜내고 있다.
불황은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들인다. 외식 대신 집 밥을 해먹고 드라이클리닝이나 집수리 등을 직접 하려는 '컴백홈 소비'가 또렷해졌다. 5000원짜리 김치찌개를 찾아보기도 힘들어진 요즘, 집에서 직접 밥을 해 먹는 '집밥족'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작은 밥솥과 즉석 식품이 잘 팔리고, 식품업계도 1인 가구까지 고려한 간편식 출시를 이어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절약 모드'로 돌아섰다. 평소 구매하던 상품보다 값은 저렴하지만 비슷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대체상품에 지갑을 연다. 보광훼미리마트에선 물, 아이스크림, 라면, 스타킹 등 소비형 상품의 경우 저렴한 PB(Private Brand Goods·대형 유통업체가 독자 개발한 브랜드) 상품이 더 잘 팔리자 500원짜리 쭈쭈바 같은 불황형 아이스크림까지 출시했다.
대형마트에서도 PB상품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 롯데마트의 경우 2008년 17%이던 PB상품 매출 비율이 올해 25%까지 뛰었다. 롯데마트의 최춘석 상품본부장은 "오랜 경기침체를 겪은 일본처럼 어떤 불황에도 견딜 수 있는 소비 스타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작은 살림도 알뜰살뜰 모을 수 있는 절약형 도구 또한 여럿 등장했다. 치약이나 튜브형 소스 등을 끝까지 짜낼 수 있는 '알뜰 튜브 짜개', 잼·음식물 등을 싹싹 긁어내는 '실리콘 주걱' 등 다양하다.
비싼 전기료를 아끼려는 이들로 G마켓에선 전기기기의 전원을 원하는 시간에 켜고 끌 수 있는 '절전 타이머'가 잘 팔린다. 옥션은 12일 9900원짜리 선풍기를 내놔 2분 만에 1000대를 모두 팔았다.
◆ 반값 할인은 돼야 주목
안 쓰고, 덜 쓰는 소비자들로 인해 웬만한 할인행사는 주목받기 힘들어졌다. 직장인 박현아(28)씨는 "할인율이 50%는 돼야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이 때문에 백화점들은 '땡처리' 수준의 파격 할인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롯데·현대백화점은 지난달 할인율이 70%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구두·핸드백, 원피스 할인행사를 열었다.
불황에 강한 '실속' '베이직' 아이템 또한 소비자들이 반긴다. 최근 GS샵의 TV홈쇼핑 방송에는 대표적인 생활소비재인 화장지가 등장해 1시간 만에 4000세트가 팔려나갔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고조됐던 2010년 5월 이후 2년만이다.
패션업계에선 올여름 평범한 티셔츠가 핫아이템이다. TBJ, 앤듀 등 캐주얼브랜드들은 1만원대 티셔츠로도 근사하게 멋을 낼 수 있는 스타일링 노하우를 강조하고 있다.
불황의 그림자는 직장인들의 여름휴가 풍경도 바꿔놓을 예정이다. 최민혁(34)씨는 "비싼 패키지 상품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일본이나 중국 자유여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하나투어가 집계한 중국·일본·동남아 여행 예약 수요는 지난해보다 31.3% 늘었다. 에어텔을 이용하는 자유여행 수요도 48.8% 증가했다. /전효순기자 hsjeon@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