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출신의 여인 나왈은 5년 동안 침묵에 묻혀 있다 죽음을 맞는다.
그는 쌍둥이 남매 시몽과 잔느에게 "아무 것도 입히지 말고 얼굴을 땅을 향해 묻은 채 묘비도 세우지 말라. 그리고 아버지와 형제를 찾아 내 편지를 전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아버지는 죽었고 형제는 존재하지 않는데 이들을 찾으라는 황당한 유언은 나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풀어주는 열쇠가 된다. 쌍둥이는, 아니 관객들은 그 진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연극 '그을린 사랑'은 지난해 동명의 영화로 먼저 개봉돼 예술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작품이다. 연극이 원작이고 영화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국내에는 순서가 바뀌어서 소개됐다.
희랍 비극 '오이디푸스'를 연상케 하는 내용이지만, 신들의 세상과 교류하던 그 당시 이야기보다는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끔찍함과 충격이 크다.
쌍둥이는 유언에 따라 어머니의 과거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한 남자를 사랑했던 10대의 나왈은 내전과 반목하는 사회에 휘말려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된다. 아이는 낳자마자 고아원으로 버려졌다. 나왈은 아이를 찾아 헤매지만 흔적을 잃어버린다. 세상을 떠돌며 본 피비린내 나는 풍경은 그를 투사로 만들었다.
연극에선 순수한 사랑을 하는 10대의 나왈과 아이를 찾아 헤매다 투사가 된 40대의 나왈 그리고 끔찍한 진실을 알고 말을 잃은 60대의 나왈을 세 배우가 연기하게 한다.
세 나왈의 시점과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나선 잔느의 시점이 교차 편집돼 명확하게 상황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중반 이후 충격적 진실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드라마의 집중력이 생긴다.
차분하게 나왈의 흔적을 쫓아갔던 영화에 비해 연극은 거칠고, 비참한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 원인을 치밀하게 파고들어간다.
끊임없는 복수의 반복으로 세상은 죽음과 상처로 얼룩졌다. 복수가 복수를 낳고 그것이 더 큰 복수를 불러오면서 세상은 지옥으로 변했다. 연극은 반복되는 복수극을 발생하게 했던 최초의 복수, 그것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놀랍게도 사랑이었다. 어리석은 복수극을 반복하는 근원에 사랑이 있다는 무서운 진실은 오이디푸스적인 사건만큼이나 강렬한 충격을 준다. 다음달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박병성 '더 뮤지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