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정현(36)이 3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시차라는 뜻의 천문학 용어 '패럴랙스'를 8집 타이틀로 내세운 그는 변화 무쌍한 디바의 자유로운 도전으로 음반을 채웠다.
▶ '나가수'로 마음 나누는 법 터득
데뷔 후 10여 년 동안 대중의 시선은 '노래 잘 하는 가수'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로 음악적 역량을 널리 알렸고, 올해 3월까지 출연한 '위대한 탄생 2'(이하 '위탄')를 통해 삶의 태도를 바꾸게 됐다.
"멘토의 역할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나가수'에서는 나만 걱정하면 됐지만, '위탄'은 편곡·퍼포먼스·의상 등 멘티의 모든 것을 챙겨야 했죠. 지금까지 멘토·선생님·선배·누나라는 단어는 저와 거리가 멀었어요. 멘티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얻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미국에서 나고 자란 후 스물 두 살에 낯선 한국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한 박정현에게 주위의 도움은 절실했다. 미국 출신인 김조한은 지금까지 정신적인 지주고, 윤종신은 데뷔 앨범부터 조언을 아끼지 않은 선배다. 4집 프로듀서로 만난 정석원은 때로는 엄격하지만 음악을 오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고마운 사람이다.
"누구 보다 선배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나도 후배에게 돌려줄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지 않는다는 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요. 제가 남보다 잘나지도 않은데 상대의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고 방어막을 치기도 했죠. 이제 먼저 다가가려고요."
'나가수'에 출연하면서 이같은 생각은 더욱 절실해졌다. 출연자들 모두 오랫동안 알던 사람이었지만, 정작 그들 속에 들어가 어울리지는 못했다.
"알고 보니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그런 걸 나누지 못하고 저만 외롭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유를 갖고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알게 된 건 '나가수'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죠."
▶ 새 음반은 파격과 실험의 연속
'나가수'는 또 오랫동안 쓰지 않던 '음악 근육'을 깨웠다. 매주 새로운 편곡과 무대 연출을 시도하면서 습관적으로 해오던 음악 방식을 벗어 던지게 됐다. 이런 자극은 8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뉴 페이스와 작업을 해야 저도 새로워질 것 같았어요. 그동안 쌓인 노하우만 믿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죠. 새로운 사람과 공동작업을 통해 생기를 불어넣고, 제 안에 있는 새로운 '박정현'을 끄집어 낼 수 있겠더라고요."
'홍대신'에서 주가를 높이는 록밴드 몽구스의 몬구와 못의 이이언으로부터 각각 '레인드롭스'와 '유 돈트 노 미'를 받았다. 경쾌한 일렉트로닉 '레인드롭스'에서 애교 넘치는 편안한 창법을 시도했고, '유 돈트 노 미'에서는 몽환적이고 절제된 목소리를 실었다.
이들 외에 러브홀리의 강현민과 이주형·MGR·지-하이 등 새로운 작곡가들과 작업하면서 다양한 결과물을 얻었다. 더불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했던 정석원과 황성제가 이번 앨범의 중심을 잡아 새로운 시도와 익숙한 음악을 동시에 배치했다.
외국곡을 리메이크해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것도 새롭다. '미안해'는 멕시코 인기 그룹 카밀라의 '미엔테스'를 재편곡해 노랫말을 붙인 곡이다. 마지막 트랙은 휘트니 휴스턴에게 헌정하는 '송 포 미'로 장식했다.
"정석원 씨와 한창 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휴스턴의 사망 소식을 접했어요. 어린 시절 가수를 꿈꾸게 했고, 제가 정말 사랑했던 가수죠. 언젠가 저렇게 노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던 마음을 담아서 노래했어요."/유순호기자 suno@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