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뮤지컬을 근거 없는 희망을 주입하는, 몸에 나쁘지 않은 아편에 비교한다.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고 환상 속에 살게 만드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살다 보면 진통제도 필요하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2002년 초연한 '헤어스프레이'는 9.11 사건을 맞은 미국인들에게 효과 좋은 진통제가 돼줬다.
1960년대 인종 차별이 만연하던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뚱뚱하지만 대책 없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신체적 장벽쯤은 가볍게 넘는 트레이시가 꿈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다.
청소년들에게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코니 콜린스쇼'를 좋아하던 트레이시는 그 프로그램의 멤버가 되고, 흑인 차별에 반대해 폭동을 주동하기도 한다. 쇼의 프로듀서 벨마는 트레이시를 미워하고 괴롭히지만, 트레이시는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미스 헤어스프레이에 오른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강한 작품이다. 신체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 트레이시의 매력은 무한 긍정의 힘으로, 이는 주위 사람들에게 전염된다.
차별받던 흑인들을 폭동에 참가하게 하고, 하마같이 거대한 체구때문에 집 안에만 머물렀던 엄마 에드나를 세상으로 끌어낸다.
그의 행복 바이러스는 관객에게도 전이된다. 거대한 덩치로 무척 리듬감있게 춤추는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작품이 추구하는 세계는 화합이다. 흑백의 화합뿐 아니라, 트레이시를 괴롭혀왔던 벨마도 화합의 세계 안에서 끌어안는다.
이같은 메시지는 국내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07년 초연 후 2009년에 이어 올해 다시 무대에 오르는데, 매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뮤지컬 배우 오소연이 연기하는 트레이시는 특수 분장에도 뚱뚱한 이미지를 주진 못했다. 그러나 시종 열정적으로 무대를 선보이며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했다.
엄마 에드나 역은 대대로 남자배우가 연기한다. 뚱뚱한데다가 남자같은 이 여인은 외모상으로는 최악의 여자 캐릭터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은 어머니다.
공형진이 에드나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했으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진 못했다. 공연은 8월 5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박병성 '더 뮤지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