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 도일과 보들레르 등에 영향을 끼친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에드가 앨런 포가 영화 속에서 부활했다. 포의 죽음에 관해선 여러 가지 가설이 난무하는데, 다음달 5일 개봉될 '더 레이븐'은 그의 묘연했던 마지막 5일을 픽션으로 재구성한 영화다.
미국의 볼티모어 빈민가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베테랑 수사관 필즈(루크 에반스)는 이 사건이 포(존 쿠삭)의 소설을 그대로 모방했다는 것을 간파한다. 연쇄살인범은 포의 연인 에밀리(앨리스 이브)를 납치하고, 모방 살인은 계속된다. 에밀리를 찾으려는 포는 소설을 모방한 살인의 시체들을 단서로 범인을 추리하지만 그 흔적은 좀체 드러나지 않는다.
에드가 앨런 포의 열혈 독자라면 그의 소설을 모방하는 살인사건에 흥미를 가질 법하다. 포의 소설 6편이 6개의 살인사건으로 등장하는데, 특히 '모르그가의 살인' '함정과 진자'를 모방한 살인은 구체적 묘사로 마치 소설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포의 실제 삶이 픽션 속에 녹아드는 것도 극에 힘을 불어넣는다. 포가 술에 빠져 있거나 한 여인을 사랑하는 모습 그리고 행려병자로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은 포의 일생과 같다.
하지만 추리영화인 '더 레이븐'에서 포의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발견하기 어렵다. 극중 포나 수사관 필즈는 체스판의 말처럼 범인이 그려놓은 틀 안에서 움직인다.
포는 카피캣 살인의 단서만 쫓을 뿐 범인을 한 번도 앞서가지 못한다. 사건 해결도 범인의 배려처럼 보인다. 영국식 추리영화처럼 느리게 진행되는 호흡은 몰입을 힘들게 한다. 게다가 쿠삭이 연기한 포는 예민해 보이긴 하지만 천재성을 느끼기 힘들다.
작가의 천재성이 영화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가장 큰 아쉬움이다.
참고로 제목인 '더 레이븐(갈가마귀)'은 포가 1945년에 쓴 시의 제목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슬픔에 잠긴 남자의 심리를 묘사했다. 18세 이상 관람가./이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