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맨서 자사호 마니아로… '홍익자사호 수장관' 강신문 대표 화제
흙냄새를 닮은 듯 오묘한 향이다. 서울 공덕동 오피스빌딩 숲을 헤치고 '홍익자사호 수장관'의 문을 여니 향긋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몰려왔다. 보이차가 익어가는 냄새란다.
이 곳의 강신문(57) 대표가 초록빛의 철관음을 우려냈다.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 대신 조르륵 찻물 따르는 소리만 들리니 여기가 서울 한복판인가 싶다. 색을 보고, 향을 맡은 뒤, 맛을 보는 순서에 따라 철관음을 마시니 마음이 먼저 알아챈다. 왠지 홀가분하고 편하다.
둘러보니 홍익자사호 수장관의 주인이 눈에 들어왔다. 1000여 점에 이르는 '자사호'다. 자사호는 중국 의흥 일부 지역에서만 나는 독특한 광물질로 빚은 찻주전자로, 중국에서는 최고의 차구로 대접받는다.
강 대표는 금융기관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1990년대부터 틈틈이 수집하기 시작해 이 곳에 터를 잡고 귀한 자사호와 중국차를 선보이고 있다. 수십 차례에 걸쳐 자사호를 만드는 작가들의 본거지인 의흥을 찾기도 하고 중국 차 시장을 누비는 등 그야말로 '미친 듯이' 발품을 팔아 모은 보물들이다.
-중국차는 아직 생소하다. 중국차의 어떤 점에 끌렸는지.
▶중국차는 종류만도 수백 가지에 이르는데 저마다 매력이 다르다. 자사호도 차 종류에 따라 궁합을 맞춰 고르고, 물 온도까지 고려해야 차 맛이 제대로 우러난다. 우리나라에 중국차가 대중화된 지 5년 정도 됐는데,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생각한다.
-작은 찻주전자 하나가 20억원이나 한다고 해서 놀랐다.
▶2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미술품 경매에서 자사호 하나가 20억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 중국에 부자들이 많아지면서 자사호의 가격도 급등했는데, 자사호가 중국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부럽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수시로 차를 즐기는 중국처럼 차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
-차가 커피의 인기에 밀리고 있는데.
▶커피가 줄 수 없는 즐거움이 차에 있다. 나는 차를 즐기는 자리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누구와 마주하고 있느냐를 뜻하는 '수여좌(誰與坐)'란 문구를 좋아하는데, 차는 커피와 달리 몇 시간씩 또는 밤새 함께 나눌 수 있다.
-요즘 즐기는 차는.
▶차를 오래 마시면, 보이차가 다 이긴다. 처음에 철관음이나 대홍포 같은 청차류에 관심 있었지만 2~3년 후 한계를 느끼겠더라. 마치 양념갈비처럼 맛이 확 와 닿지만 금세 질려 생갈비를 찾게 되듯 보이차에 점점 빠지게 됐다. 보통 6~7시간, 밤을 새면서 마시기도 한다. 보이차는 초보자들에겐 쿱쿱하고 생소하다. 우리나라 홍어나 과메기처럼 알아야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중국차를 일상에서 쉽게 즐기고 싶은데.
▶요즘 차를 쉽게 우려 마실 수 있는 다구가 많이 나와 있다. 관심만 있다면 차는 생활의 일부가 된다. 마른 찻잎을 뜨거운 물로 한 번 헹궈내는 '세차'를 하면 7~8번 정도 우려 마실 수 있다. 새로운 차 맛에 미각이 깨어나는 걸 느낄 것이다. 문의: 02)717-2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