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작품들은 세계적인 명작으로 정평이 나있고,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많이 공연되고 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그의 작품을 감명 깊게 본 적이 드물다. 시대적 배경이 100년 전 러시아인데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구성이 집중을 방해해서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은 비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를 세심하게 다루고 있어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대표작 '갈매기'를 1980~90년대 전남 벌교의 상황으로 옮겨온 김은성 작가의 '뻘'은 원작의 매력을 우리에게 익숙한 상황과 차진 전라도 사투리로 녹여내 조금 더 살갑게 다가오게 한다.
81년 광주의 대학에서 그룹사운드를 했던 운창이 같은 그룹의 정석과 고향 벌교로 내려와 실험적인 음악 작업에 열중한다. 운창의 어머니로 당대 유명 트로트 가수였던 동백은 유명 작곡가 갤럭시 박과 고향으로 운둔하기 위해 온다.
운창의 연인인 홍자는 갤럭시 박의 음악에 매료돼 그의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동백과 갤럭시 박은 운창의 음악을 대놓고 무시한다.
등장인물들의 욕망은 '갈매기'속 인물들의 그것처럼 엇갈린다. 운창은 홍자를 바라보지만 홍자의 마음은 갤럭시 박을 향하고, 갤럭시 박은 홍자의 순수한 열정에 흔들리지만 동백과 보낸 시간을 뿌리치지 못한다. 운창을 바라보는 동네 처녀 은옥과 그런 은옥의 곁을 맴도는 상종 역시도 엇갈린 욕망 속에서 괴로워한다.
그 사이로 80년 광주라는 폭력적인 역사가 끼어든다. 역사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듯 보이는 뻘밭 벌교지만, 이곳 사람들의 삶 속에는 80년 광주의 흔적들이 묻어난다.
다시 시간이 흘러 동백은 홍자에게 영감을 얻은 갤럭시 박의 노래로 다시 한 번 재기에 성공하고 운창은 대중가수로 전향하며, 은옥은 한결같이 자신을 바라보던 상종을 받아들인다. 욕망과 타협해 새로운 장을 열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충족되지 않은 욕망들이 쓸쓸하게 드러난다.
인기를 얻어 대중가수가 된 운창과 여전히 실험적인 노래를 고집하는 정석의 마주침은 어떤 선택을 해도 허한 느낌을 채울 수 없는 인간의 쓸쓸한 운명을 보여준다. 7월 2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박병성 '더 뮤지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