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불황 탓에 올여름 휴가 트렌드가 '얇은 지갑에 맞춘 알뜰 국내 여행'으로 요약되고 있다.
여름휴가 때마다 해외로 떠났던 직장인 전현준씨(33·남)는 올여름 휴가지로 강원도를 택했다.
전씨는 "월급은 그대로인데 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진다고 하니 통장 잔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해외 여행 절반 가격으로 강원도 캠핑장과 계곡에서 재미있게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름 전국 구석구석의 휴가 명소는 전씨 같은 이들로 들썩일 듯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5%가 올여름 휴가로 국내 여행을 계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휴가지로는 강원도(25.6%)가 첫손에 꼽혔다. 이어 전남(17.3%)과 경북(12.7%) 순이었다.
여행 기간으로는 대부분 2박3일(32.0%)을 생각하고 있으며, 여행 평균 기간은 2.8일로 조사됐다.
경기가 어려운 이유로 여름 휴가를 미리 계획한 사람의 비율은 크게 줄었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는 64.3%가 여름 휴가를 다녀오겠다고 답했지만 올해는 50.6%로 크게 떨어졌다. 1인당 평균 지출 금액은 21.7만원으로, 10만~20만원(36.3%)을 쓰겠다는 이들이 가장 많았다.
전통적인 휴가 성수기를 일컫는 '7말8초' 현상은 여전했다. '7월 30일~8월 5일' 사이 떠나겠다는 응답자가 36.4%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비싸고 북적이는 성수기를 피하려는 '실속파'가 늘어나면서 휴가 패턴에도 변화가 생겼다.
인터파크투어가 최근 고객 378명을 대상으로 휴가 기간을 물은 결과, 저렴하고 한산하게 즐길 수 있는 '8월 말~9월 초'(43.4%)를 꼽은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아이들 방학 때문에 해마다 7월 말이나 8월 초에 휴가를 다녀왔던 고영상(43)씨네 가족 역시 올여름 휴가를 8월 말로 미뤘다.
고씨는 "휴가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일정을 늦췄다"며 "주말을 걸쳐 짧게 다녀올 수 있는 국내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비수기였던 7월 초 '이른 휴가'를 떠나겠다는 피서객들이 늘면서 국내 주요 피서지의 숙박 예약률도 급증했다.
인터파크투어의 경우 전국 해수욕장 인근 숙박 예약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가까운 169%나 증가했다.
이 회사 국내사업본부 이기황 팀장은 "경기침체로 비교적 값싼 국내 휴가지를 찾는 여행객들 때문에 일찍 개장한 해수욕장이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며 "관련 업계들은 알뜰족을 겨냥해 반값 펜션 등 저렴한 여행상품을 앞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체험마을도 각광
당일치기나 1박2일 코스로 적당한 '농촌체험마을'도 새로운 휴가지로 각광받고 있다.
경기도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양평, 여주, 이천, 가평 등 도내 인기 농촌체험마을을 추천했다.
경기도 농촌체험관광 관계자는 "나룻배타기, 활쏘기 등 이색 체험은 물론 1만~2만원 안팎의 비용으로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고 수확한 농산물을 먹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어 아이가 있는 가족 관광객들에게 인기"라며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 각지에서 예약 문의가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해외 유명 휴양지보다 부모님이 살고 있는 고향집을 찾거나, 고급 호텔 대신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를 이용하는 등 경기 불황이 여름 휴가 문화의 거품을 걷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