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건형(35)에게 올 여름은 '변신의 계절'이다. '완벽남' 조은성으로 출연했던 MBC 수목극 '아이두 아이두'가 끝나자마자, 뮤지컬 '헤드윅'(11일 개막)으로 달려가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남자 헤드윅을 연기하는 그와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조은성과 헤드윅'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 실제로도 조은성? 글쎄요
대작으로 꼽히는 경쟁 드라마에 치여 높은 시청률로 마무리되진 못했지만, 대진운이 안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극중 조은성은 '갖고 싶은 남자'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주인공 박태강(이장우)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다.
높아진 인기와 이미지 이상으로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박건형이라는 배우가 가진 '연기의 맛'이 대중에게 통했다는 점이다.
"조은성을 제가 생각하는 멋진 남자로 재해석했어요. 엄마와 다툰 친구에게 '왜 그랬어!'가 아니라 '얼마나 속상하니?'라고 먼저 공감해준 다음에 조언을 하는 그런 남자요. 자연인 박건형에게도 그런 면이 있냐고요? 글쎄요. 배우의 좋은 점은 합법적인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하하하.".
그의 말처럼 하룻밤 실수로 외간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직장 생활로 고생하는 황지안(김선아)에게 조은성은 치유 그 자체였다. 판타지속 캐릭터처럼 마냥 근사하기 보다는, 여성들의 멘토로 현실감을 불어넣고 싶었다.
"이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남성 위주의 사회가 주는 부당함을 견디기 위해 여성들이 너무 높은 방어벽을 쌓고 산다는 걸 느꼈어요. 지안과 같은 입장에 처한 여성들에게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죠. 누군가는 '말도 안되는 판타지'라고 얘기했지만, 가까운 미래에 그 판타지가 현실이 될 거에요."
▶ 헤드윅 역할 2가지와의 싸움
훈남 연기를 마치고 도전장을 내민 작품은 앞서 조정석·김동완·윤도현 등 쟁쟁한 배우들이 거쳐갔던 '헤드윅'이다. 성전환 수술에 실패한 트랜스젠더 헤드윅이 자신의 삶과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이다.
박건형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으로 세상과 맞서는 헤드윅을 연기하기 전, 바에서 만난 한 트랜스 젠더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귀띔했다.
"24시간 여자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그를 보면서 '여자보다 여자를 더 많이 알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어쩌면 '천생 여자'란건 없는 게 아닐까요. 여성들이 갖고 있는 '여성스러움'이란것도 사실 사회가 가르친 관념들이잖아요. 그런 부분에 많이 집중하려고 해요."
그는 이번 작품을 '싸움의 연속'이라고 표현한다. 세상이 갖고있는 성(젠더)에 대한 편견과의 싸움이자, 배우로서 쌓아왔던 젠틀하고 댄디한 이미지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평생 입어볼 일이 없었던 원피스와 여성 속옷도 큰 난관이다.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고개를 숙이는 동작 하나하나도 두통거리다. 모두가 생소하고 불편하지만 "(여성 속옷은) 어깨끈이 정말 중요하다"며 더 예쁜 옷태를 위해 체중 감량에 돌입했다.
배우 인생 첫 여장 연기에 도전하는만큼 여자가 봐도 아름다운 여자, 한 눈에 반할만큼 사랑스러운 박건형표 헤드윅을 드러내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아이두…'의 조은성이 황지안을 치유했듯 '관객을 치유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와 여자는 각자 누리는 것은 자각하지 못하고 서로를 부러워만 해요.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법이니까요. 그 사이에서 무엇도 누릴 수 없고,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패러독스를 가진 헤드윅을 통해서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그의 치열한 인생을 본 관객분들이 공연장을 나설 땐,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각자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권보람기자 metrogwon@metroseoul.co.kr·사진/김도훈(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