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의 경력은 그 자체로 K-팝의 역사다. 드라마에 이어 한류 열풍을 계승한 K-팝 인기의 시작이 바로 보아의 등장으로부터 비롯된 까닭이다.
1986년생으로 2000년에 데뷔, 이듬해 곧바로 일본 진출을 선언한 보아는 현재까지 오리콘 차트 톱10 진입곡이 무려 15곡에 이른다. 일본 시장이란 블루 오션을 최초로 개척한, 2000년대 이후 '넘버 원' 가수 중 하나다.
자연스럽게 보아는 거의 모든 후배 아이돌의 단순한 선배가 아닌, 음악적 채권자로서 강력한 아우라를 발산한다. 이른바 주류 가요의 중요한 경향으로 자리매김한 'SM 스타일'도 그 시작은 엄연히 보아의 등장 이후에 확립된 것이었다.
세련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한국적 멜로디, 여기에 핵심적인 부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SM엔터테인먼트만의 사운드는 현재 국내와 일본을 넘어 세계를 무대로 거대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보아는 7집에서 되려 힘을 쭉 뺐다. 격렬한 댄스 머신으로서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이, 차분히 사랑을 노래하고 인생을 되돌아본다.
첫 싱글 '온리 원'이 대표적이다. 보아의 보컬 표현력은 이같은 발라드 분위기에서도 강점으로 발휘된다. 프레이징이 워낙 좋아 가사가 일단 잘 들리고, 음색이 견고해 라이브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성숙'이라는 키워드가 전체를 관통해 흐른다.
물론 댄스 곡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 섀도우' '더 톱' 등은 듣는 이들에게 여전히 탁월할 그의 춤 실력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번 음반은 '톤 - 다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같은 격렬함보다는 여유로움이 넘쳐서 좋다. 이렇듯 음표 하나하나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화려한 댄스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 보아라는 가수의 최대 무기다.
상당한 고민이 수반됐을 앨범이다. 생기발랄한 젊은 후배들이 광속으로 치고 올라오는 와중에 더 이상 과거와 동일한 방법론으로는 승부수를 띄울 수 없다는 판단이 뒤따랐을 것이다. 음악적으로 자기를 낮추고 있는 현재에서 더욱 높아질 미래를 그려본다. /배순탁(음악평론가·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