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의 취조실에 세 남자가 있다. 예리한 눈빛을 지닌 중년의 형사 투폴스키(손종학)와 거칠어 보이는 젊은 형사 에리얼(조운)이 영문도 모른 채 붙잡혀있는 소설가 카투리안(김준원)을 집요하게 심문한다. 옆 방에는 지적 장애를 가진 카투리안의 형 마이클(이현철)이 있다.
2007년 초연 후 5년 만인 11일 두산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연극 '필로우맨'은 이 취조실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속 아동 살인 사건이 현실에서 재현되면서 용의자로 지목된 소설가 형제와 그들을 취조하는 형사들의 진실 게임이 주요 줄거리다.
언뜻 보면 단순한 형사물이나 스릴러물 같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야기가 가진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낸 이 작품은 극이 진행되면서 원작자 마틴 맥도너가 왜 '연극계의 쿠엔틴 타란티노'로 불리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극에는 아이들이 미래에 불행한 삶을 살지 않도록 자살을 돕는 필로우맨의 이야기를 그린 '필로우맨', 양부모에게 학대당하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예수 소녀' 등 카투리안이 쓴 7개의 잔혹한 동화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들은 형을 7년동안 학대한 친부모를 살해한 카투리안, 부모에게 학대를 받고 동생이 쓴 잔혹한 동화들을 듣고 자란 마이클, 자식을 잃은 투폴스키, 어린시절 학대받은 경험을 가진 에리얼의 경험과도 맞닿아있다.
단순한 액자식 구성에서 벗어나 이야기와 현실, 현재와 과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구성이 놀랍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전개도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한다. 스토리텔러로 나선 카투리안의 입으로 전해지는 동화의 내용은 어둡지만 환상적이다.
특히 소설들은 현실에 대한 수많은 해석을 야기하는 상징과 은유로 구성된 탓에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아동 학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 외에도 맥도너의 자전적 이야기나 형사들이 살인으로 결론 내놓고 심문하듯 권력자의 팩트 조작에 대한 지적일 수도 있다.
악을 악으로 응징하는 것에 대해 정의와 행복의 의미를 고찰해보거나 기독교적 세계관, 현실이 가진 거대한 모순, 엇나간 윤리 의식 등을 생각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연출가 변정주씨가 "뭔가 얘기하려고 하지 않는 작품인데 관객은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게 작가와 독자, 창작자와 관객의 관계이고 소통이 아닐까한다"라고 말했듯 작품의 해석은 결국 각자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3시간 여의 긴 공연이 네 배우의 대사 만으로 진행됨에도 크게 지루하지 않다. A4 3~4장 분량을 한 호흡으로 읽어내면서 카투리안의 복잡한 내면을 연기한 김준원의 연기가 눈길을 끈다. 나머지 배우들도 각자 맡은 역할의 특색을 잘 잡아 소화했다. 문의:744-4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