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은 시치미 뚝 떼고 진지한 얼굴로 해야 제 맛이다.
30일 개봉될 '링컨 : 뱀파이어 헌터'가 그렇다. 어릴 적 위인전의 주인공으로 익숙한 미국 노예 해방의 아버지 링컨 대통령이 실은 흡혈귀 사냥꾼이었다는 황당한 가설, 아니 말도 안 되는 '뻥'을 꽤 그럴 듯하게 치고 있어서다.
소년 에이브러햄 링컨은 어머니가 뱀파이어에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성장한 링컨(벤자민 워커)은 어머니를 죽인 뱀파이어를 상대로 복수를 시도하지만, 거꾸로 자신이 죽을 위험에 처하고 이 때 나타난 헨리(도미니크 쿠퍼)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헨리는 링컨에게 뱀파이어 헌터가 될 것을 권유하고, 링컨은 헨리의 권유를 받아들여 낮에는 변호사를 꿈꾸는 가게 점원으로, 밤에는 은도끼를 든 뱀파이어 헌터로 이중 생활을 계속한다.
원작자인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란 작가의 경력부터 파악하는 게 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첫 번째 순서일 듯싶다. 논픽션 작가와 영화 프로듀서로 활동해 온 그의 소설 데뷔작은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이라고? 맞다. 제인 오스틴의 고전 로맨스 '오만과 편견'에 좀비 장르를 먹음직스럽게(?) 버무린 작품이다. '링컨…'의 시작이 어떻게 비롯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면화 생산을 위해 값싼 노동력이 절실했던 남부인들이 흑인들을 먹잇감으로 삼던 흡혈귀들이었고, 어찌 보면 생존의 일환으로 남북전쟁을 일으켰다는 영화속 설정은 동양 무술을 빌려온 듯한 액션 장면과 자칫 따로 놀 것같지만 의외로 잘 맞물려 돌아간다.
초상화와 동상으로만 봐 왔던 링컨 대통령이 마치 환생한 것처럼 싱크로율 100%를 자랑하는 주연 벤자민 워커의 근엄하면서도 수줍은 액션 히어로 연기 역시 볼 만해 막바지 무더위를 잡을 킬링타임용으로 그만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악처로 소문났던 링컨의 아내 메리(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와 관련된 에피소드 등 소소한 역사적 사실들을 더 많이 다뤘으면 재미가 배가됐을 것이다. 세종의 즉위 전을 팩션으로 그렸던 '나는 왕이로소이다'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18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