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빛깔의 청량함을 지닌 박진희(34)가 자신을 닮은 '청포도 사탕 : 17년 전의 약속'(다음달 6일 개봉)으로 2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잊고 지내던 17년 전의 아픈 기억을 서른 살이 돼서 새롭게 마주하게 된 여주인공이 이를 극복하고 성장해 가는 힐링 무비로, 그의 섬세한 감정연기가 관객의 마음을 치유한다.
▶ 시나리오 받자마자 '두근두근'
드라마 '자이언트'를 끝낸 피로가 가실 무렵 이번 작품의 시나리오를 만났다. 김희정 감독의 전작인 '열 세 살 수아'를 무척 재밌게 봤던 터라 시나리오를 손에 쥔 순간부터 큰 기대를 했다. 출연을 결정하고 김 감독을 만난 뒤에는 영화에 대한 감정이 더 구체화 됐다.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들이 있는데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 공감했어요. 현장에서 감독님은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았어요. 의도하지 않아도 굉장히 합의가 잘 이뤄졌죠. 감정 신을 찍을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법이 없을 정도로요."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 그와 같은 시기와 환경을 지나온 사람이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30대 초반의 다양한 감정과 고민을 여주인공 선주에 녹여냈다.
"영화 '궁녀'와 드라마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 이어서 또 여자 감독님과 작업했는데 참 편해요. 시도 때도 없이 소통할 수 있잖아요. 여자들만이 쓰는 언어는 다르거든요. 제가 여중·여고·여대를 나와서 여성들끼리의 작업에 익숙하죠. 그런데다 배우도 김정란 언니랑 박지윤씨 이렇게 셋이 주로 어울리다 보니 촬영 내내 수다 꽃을 피웠어요."
▶ 환경 운동은 또 하나의 삶
영화 촬영을 끝내고 올해 초까지 JTBC 드라마 '발효가족'에 출연했다. 그러나 낮은 시청률 탓에 대중과 넓은 접점을 갖지 못했다. 오랜 만에 출연한 이번 영화도 저예산으로 제작돼 소규모로 개봉될 예정이라 공백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박진희는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작품도 인연이 돼야 하는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했잖아요. 계속 제의를 받는다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일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지금의 행복도 없어질 것 같으니까요."
일상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또 하나는 환경 운동이다. 그는 "20대 초반에는 매우 열정적으로 사회 정의를 추구했다. 잘못된 것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며 "수시로 청와대 신문고에 민원을 넣었고, 대기업의 횡포와도 맞서 싸웠다"고 말했다.
"동네 하수 처리에 문제가 있어서 신고한 적이 있는데, 한 집안의 가장인 담당 공무원이 저 때문에 위기에 처하게 됐더라고요. 그때 '정의로운 사회란 과연 뭘까' 많이 고민했죠. 이후로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을 찾게 됐고, 그게 환경 운동으로 이어졌어요."
▶ 한방 제대로 먹여줄 날만 기다려요
다양한 인간상을 연기로 소화해야 하는 배우에게 반듯한 에코 이미지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정확한 틀에 맞춰 생활하는 은행원을 연기한 것처럼 지금까지 평범한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바른 생활도 제 모습 중 하나니까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저라고 악녀 같은 이면이 없겠어요? 사이코패스나 여전사도 해보고 싶고, 아직 안 해본 연기가 너무 많아요. 도전할 수 있다는 게 배우의 매력이죠."
만능 스포츠맨에 체력도 타고나 휘트니스센터에서 만난 개인 트레이너는 철인3종 경기에 출전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한방 제대로 먹여줄 날이 올 거예요. '하나만 걸려라'는 심정으로 기회를 보고 있죠. '박진희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벽한 반전을 보여줄 때를 기다리고 있어요."·사진/서보형(라운드테이블)·디자인/양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