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인간 병기'의 정체성 찾기를 그렸던 '본' 시리즈는 뼈와 살이 충돌하는 액션 장면을 앞세워 2000년대 이후 등장한 할리우드 액션물들의 '교범'으로 자리매김했다. 5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007' 시리즈마저도 2006년 '카지노 로얄'부터는 '본'을 따라했을 정도니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본 레거시'는 시리즈의 위업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 새로운 재미까지 안겨줘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수명이 다 된 인기 프랜차이즈물을 버리자니 아깝고, 이어가자니 힘에 겨워 하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고민이 읽힌다.
줄거리는 전편 '본 얼티메이텀'으로부터 이어진다. 제이슨 본(맷 데이먼)에 의해 CIA내 비밀 조직인 트레드스톤의 정체가 폭로되자, 국방부도 빨간 불이 켜진다. 트레드스톤처럼 특수요원을 양성하는 아웃컴 프로그램이 덩달아 공개될 위기에 처하면서, 국방부는 프로그램의 수장인 바이어(에드워드 노턴)에게 관련 인물들의 제거를 지시한다.
아웃컴 프로그램의 정예 요원 애런 크로스(제러미 레너)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동료들이 살해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프로그램의 연구원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르타(레이켈 와이즈)와 함께 국방부의 음모에 맞서기 시작한다.
1~3편의 원안을 제공한데 이어 메가폰까지 잡게 된 시나리오 작가 출신 토니 길로이 감독은 전편과 맞물리는 줄거리에 새로운 인물들을 섞는 방법으로 시리즈의 효과적인 리부팅을 꾀한다. 이를테면 오랜 단골과 새 손님을 모두 잡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같은 설정은 당초의 의도를 살리지 못하고, 전작들과 비교되면서 단점만 오히려 두드러지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며 인간적인 연민을 불러일으켰던 본과 달리, 애런은 신체 능력을 유지시켜주는 약만 찾아다니는 탓에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인상적인 악역들이 없다는 점도 다소 아쉽다. 본은 마치 컴퓨터 격투 게임의 주인공처럼 등급을 올려가며 차례로 강적들을 상대하지만, 애런은 제대로 된 맞수를 만나지 못한다.
차라리 시리즈와 별개의 작품이었으면 후한 평가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너무 잘난 형을 둬서 못나 보이는 동생의 신세다. 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