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주(25)가 슬픔과 연민을 품은 조선의 여인으로 돌아왔다. 13일 개봉될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두 명의 왕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중전으로 출연해, 한층 성숙한 연기로 작품의 중심을 잡았다. 특유의 당당함과 여성스러움이 공존하는 매력은 극 전체에 은은하게 퍼져 있다.
▶ 영화의 홍일점...분량 적지만 묵직한 힘
극중 중전은 주변의 음모와 모략으로 인해 이성을 잃어가는 광해의 모습에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지만, 광해의 대역으로 나선 천민 하선 덕분에 점차 웃음을 찾아가는 인물이다.
광해와 하선 1인2역을 연기한 이병헌과 허균 역의 류승룡 등 남성 연기자들이 주축이 된 이 영화의 홍일점이자, 적은 분량으로도 묵직한 힘을 불어넣는 큰 몫을 했다.
"캐릭터나 분량의 욕심 보다 이 영화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컸죠.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해서 빠져들 만큼 힘이 있었고, 완벽했어요. 이미 다른 영화('반창꼬') 출연이 예정돼 있었지만 어느 한 부분만이라도 참여하고 싶었어요. 결과물을 보니 역시 제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었고요."
이번 영화는 2010년 드라마 '동이'에 이은 두 번째 사극이다. 한효주는 당시 60부작의 타이틀롤을 맡아 시청률 1위를 이끌었고, 연기대상까지 거머쥐면서 '국가대표급' 사극 배우로 발돋움했다.
왕과 얼굴이 같은 천민이 왕 노릇을 한다는 극단적인 설정과 코믹한 전개로 지나치게 가벼워질 수 있었지만, 기대를 벗어나지 않은 안정된 연기로 작품 전체의 균형을 잡았다.
"1년 동안의 경험은 무시 못할 것 같아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 저도 모르게 사극 대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촬영이 끝나갈 무렵에는 이병훈 감독님('동이' 연출자)께 감사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죠. '동이'에 출연할 때는 정말 힘들어 다시는 사극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어느새 또 그 매력에 빠지게 된 데에는 이 감독님 덕이 컸어요."
▶ "이병헌 선배 얄미울 정도로 연기 잘해"
중전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하면서 얼굴에는 슬픔과 연민을 드러내는 것이 이번 영화에서 그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였다. 총명하고 마음 따뜻했던 '동이'의 숙빈 최씨보다 한층 성숙한 이미지가 필요했다.
"호흡이 긴 드라마와 달리 짧은 시간에 강한 이미지를 남기는 게 중요했어요. 거의 장식을 얹지 않은 단아한 쪽머리, 무채색 의상, 그리고 메이크업은 거의 하지 않은 얼굴 등 직접 아이디어를 내며 중전의 비주얼을 만들었죠."
소속사 선배이기도 한 이병헌과는 처음으로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처음 사극을 경험했지만 얄미울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하더라"는 칭찬과 함께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선배님과 '붙는' 장면이 대부분이었는데 상당히 연기 호흡이 좋았어요. 한마디로 제가 묻어갈 때가 많았죠. 20년 동안 연기를 했는데도 늘 몰입하는 태도와 연기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잊혀지지 않았어요.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직접 확인했죠."
▶ 신분 뛰어넘는 멜로신 "또 다른 재미"
이번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는 중전과 하선(이병헌)의 신분을 뛰어넘은 멜로다. 지난해 '오직 그대만'에서 선보인 정통 멜로와는 또 다른 매력을 전한다.
지난주 촬영을 끝낸 '반창꼬'에서는 고수와 호흡을 맞춰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캐릭터로 색다른 멜로 연기에 도전했다. 다음달에는 설경구·정우성과 호흡을 맞추는 영화 '감시'에서 경찰 특수범죄과 감시반 신참 대원역을 맡아 촬영을 시작한다.
"실제 성격이 워낙 들쑥날쑥해서 한 가지로 규정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드라마 영향으로 밝은 모습으로 비춰졌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연달아 출연하는 네 편의 영화를 보시면 아마 진짜 저에 대해 눈치챌 거예요. 한효주의 변화는 이제 시작이죠."·사진/서보형(라운드테이블)·디자인/전석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