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로 남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정태호(34)가 인터뷰 도중 고작 개 인형 하나 때문에 고개를 푹 숙였다. 마주친 시민들마다 그는 뒷전이고 인형인 브라우니와 기념 사진을 찍고 싶다는 부탁만 해서다. 정태호는 "오늘만이 아니라 매번 이런다. 자존심이 상해도 너~무 상한다"고 투덜거린 뒤, 옆 자리에 위풍당당한 포즈로 앉아있는 브라우니를 질투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며 외쳤다. "물어!"
# 브라우니, CF에 의상 협찬까지
브라우니는 '개콘'의 인기 코너 '정여사'에서 정태호가 연기하는 부잣집 사모님 정여사의 애견으로 등장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KBS 소품실에 박혀있던 인형에 지나지 않았지만, '개콘' 출연자보다 더 화제가 됐다.
정여사가 물건을 환불하는 과정에서 억지를 부려 더 큰 이득을 챙기려는 꼼수가 들통날 때마다 "브라우니, 물어!"라고 말하거나, 대답 없는 브라우니에게 "차도남" "착해"라고 애드리브를 칠 때마다 웃음이 빵빵 터졌다.
"저보다 더 인기가 있다니까요. 요샌 멤버들을 제치고 단독 CF와 의상 협찬까지 제의받아요. 전 브라우니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개 통역사가 됐죠. 어디 못 도망가게 전속 계약부터 맺어야겠어요."
코너 인기가 높아져 좋다면서도 얼굴엔 왠지 모를 착잡함이 감돌았다. 다른 때는 몰라도 녹화 중에까지 관객들이 무대 바닥만 보고 있어서다.
"그 땐 질투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난다니까요. 게다가 브라우니는 변명조차 안 하니 더 답답하죠. 브라우니가 이렇게 인기가 많아질 줄은 몰랐는데, 코너 이름이라도 내 성을 따서 천만다행이에요. 저도 개처럼 호감 있는 사람이 될래요."
# 멤버 송병철 김대성은 '까불이'
말은 이렇게 해도 '개콘'에서 가장 잘 나가는 두 코너 '정여사'와 '용감한 녀석들'의 리더다. 서른살이던 2008년 KBS 23기 공채 개그맨으로 뒤늦게 데뷔했지만, '발레리노' '감사합니다' 등 코너마다 성공하며 금세 자리를 잡았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체해도 좋으니 빨리 먹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어요. 물론 속된 말로 '까인' 적도 많죠. 코너를 5~10개 기획하면 하나만 무대에 올라가니까요. 그래도 요새 더 잘 되는 것 같긴한데, 결혼해서 그런 걸까요?"
올해 초 '개콘'의 조예현 작가와 결혼한 그는 "아내가 나와 개그 코드가 맞지 않아 조언은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아내이기 전에 작가라 말을 하면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없다"고 고마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팀 멤버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용감한 녀석들'의 신보라·박성광·양성일과는 이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고, '정여사'의 두 멤버(송병철·김대성)는 까불거리지만 아이디어가 좋다"면서 두 코너의 장수를 기원했다.
"'용감한 녀석들'은 힙합 가수를 초대해 대결하거나 노래를 새롭게 바꾸는 방안을 고민 중이고, '정여사'는 정여사 남편의 진상을 보여주거나 브라우니의 가족을 데려나오면 어떨까 생각 중이에요. 개가 안되면 고양이라도요. 하하하"
사진/서보형(라운드테이블)·디자인/전석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