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이 배우의 이름을 출연진 자막 상단에서 보는 일이 잦아졌다. 비중있는 캐릭터로 나오는 횟수가 늘어났다는 뜻이지만, 정작 곽도원(38)은 "얼굴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건 정말 기분 좋지만, 솔직히 불편한 점도 많아졌다"며 푸념했다. 2년전 '황해'를 시작으로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와 드라마 '유령'을 거쳐, 다음달 초와 중순 '점쟁이들'과 '회사원'의 개봉을 연이어 앞두고 있는데 뭐가 그리 고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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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소주 한 잔 주고받기가 어려워졌다. 얼마전에는 술집에서 웬 중년 아저씨가 계속 어깨를 툭툭 치며 동생 대하듯이 "야...너..."만 연발하는 경험도 겪었다.
꽤 다혈질이므로 속에서는 부글부글 꿇어오른다. 그러나 "아...네"라며 어색한 미소를 지은 뒤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한다. "제가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잖아요. (웃음) 그런데도 '유령'이 끝나고 나선 이름을 부르며 함부로 대하는 분들이 곧잘 있어요. 성질 같아서는 어휴…. 그래도 참는 걸 보면 연예인 다 됐다고 친구들이 놀리곤 합니다."
연예인들이 외로워하면서도 자꾸만 숨는 이유도 어렴풋이 알 것같단다. 하루종일 주위 사람들의 대접을 받다가 집에 가면 혼자인 기분은 누구도 모른다며 "그래서 바깥으로 나가면 대중의 눈을 또 의식해야 하니 자기들끼리의 아지트로 자꾸만 숨어드는 듯싶다. 나야 나이먹어 유명해졌으므로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하지만, 어린 친구들은 이겨내기가 힘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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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호러 액션물 '점쟁이들'에서는 한 눈을 가리고도 귀신의 존재를 밝혀내는 심인 스님으로, '회사원'에서는 엘리트 살인청부업자(소지섭)를 시기하는 조직내 중간 보스로 각각 출연한다. 두 캐릭터 모두 주연급으로, 줄거리를 전면에서 이끌어간다.
비중이 커지다 보니 몸고생도 덩달아 심해졌다. '점쟁이들' 촬영 때는 특수렌즈를 착용한 눈에 모래가 들어가 각막이 손상됐고, 안대를 오래 끼어 시력이 아예 떨어졌다. "'회사원'에서는 힘 좋은 소지섭 씨한테는 마구 맞기까지 했고요. 두 편을 끝내놓고 건강이 조금 상했어요. '범죄와의 전쟁…' 때는 최민식 선배님을 때리는 걸로 끝냈는데, 그때보다 솔직히 마음은 편했습니다. 대선배님 때리는 연기가 정신적으로 보통 힘든 게 아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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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도원이 생각하는 배우는 '광대'다. 15년이 넘는 무명 배우 생활끝에 얻은 결론이다. "광대의 '광'은 미칠 광(狂)이 아니라, 넓을 광(廣)이거든요. 넓고 크게(大) 세상을 보라고 해서 광대입니다. 한 마디로 나 잘났다고 미쳐 날뛰는 게 배우는 아니라는 거죠. 자신을 낮추고 세상을 즐겁게 하는 것이 배우의 임무입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배우론을 설명하는 그에게 "왜 지금 대중이 당신을 좋아하는지 고민해 본적이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주저없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고 사랑받으려 애썼던 내 노력이 이제서야 인정받는 것같다"면서도 "그러나 운좋게 좋은 스태프와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자신의 노력과 타인의 도움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파악하며 되새길 줄 아는 이 배우, 왠지 오래 만날 것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한제훈(라운드테이블) 디자인/전석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