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수사반장'과 더불어 인기를 끌었던 TV 수사물이 '113 수사본부'였다. 남한 내 간첩을 잡는 반공 드라마로, 그 당시는 반공과 간첩에 대한 경각심이 강조되던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까마득한 먼 얘기처럼 느껴진 요즘, 남파 고정 간첩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간첩'이 추석을 겨냥해 20일 공개됐다.
10년간 지령을 받지 못한 간첩 김과장(김명민)은 중국에서 비아그라 등을 밀수해 가족들의 생계를 이끌어가는 평범한 가장이다. 10만 원 복비에 쌍욕을 내뱉는 부동산 중개업자 강대리(염정아), 탑골공원의 독거노인 윤고문(변희봉), FTA 반대에 앞장서는 귀농 청년 우대리(정겨운) 등도 모두 남한 생활에 길들여진 고정 간첩들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들에게 북에서 온 최부장(유해진)이 망명인사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생활형 간첩의 모습을 현대 사회상과 가볍게 결부시키고, 여기에 가족애와 코미디, 액션 등을 적절히 섞은 이 영화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제목과 달리 친밀하게 다가온다. 그건 주인공들이 남한 생활에 젖을대로 젖은 간첩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세금 인상을 고민하고 자식을 키워야 하며 외롭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 또 우대리는 미국 소 수입을 반대한다. 너무도 평범한 우리네 삶의 모습이 제대로 투영된 것이 큰 장점이다.
또한 김명민을 비롯한 염정아·변희봉·정겨운 등의 편안한 연기도 돋보인다. 특히 현금 다발의 냄새를 맡으며 "스멜"을 외치는 김명민의 모습은 그동안 흔히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반대로 유해진은 웃음기를 거두고 시종 진지한 모습인데 꽤 어울린다.
다만 요인 암살 과정에서 무리한 설정이 거슬리고, 시내 총격전이 힘들었을 촬영에 비해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는 게 아쉽다.
그나저나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97년 남한 망명 당시 서신에 '남한 내 간첩이 5만 명'이라고 했다는데, 그들은 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15세 이상 관람가./이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