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성민(44)은 그야말로 요즘 가장 '핫'한 중년 스타다. 지금의 높은 인기에 대해 "MBC '골든타임'의 인간미 넘치는 의사 최인혁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을 뿐"이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지만, '대세'외에 그를 설명할 말은 없는 듯 했다. "만약 다시 '골든타임'을 하게 된다면?"이란 질문에는 촬영장에서의 고생이 언뜻 스쳐간 듯 "어휴~"하며 작게 한숨을 몰아쉰 뒤 "그래도 같이 했던 '식구들'과 함께라면 생각해 보겠다"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완판남
아내와 함께 동네 백화점 지하 매장에 들렀다가 고른 2만9000원짜리 시계가 팬들 사이에서 '최인혁 시계'로 불리며 '완판남'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드라마가 끝난 지금, 정작 그가 갖고 있는 '최인혁 시계'는 하나도 없다. 촬영 중간 먼 걸음을 해 준 팬클럽 회원이 고마워 즉석에서 차고 있던 시계를 교환해줬고, 팬과 바꿔 찬 시계는 촬영이 끝나는 날 스태프에게 선물로 줬기 때문이다.
자칭 늙은 아저씨를 보러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팬들이 사진을 찍어가거나, 우후죽순 생겨나는 인터넷 팬클럽들을 보면 아직도 깜짝 놀란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인기는 배우가 아닌 역할에서 온 것일 뿐이고, 주연 경험이 풍부한 이민우 역의 배우 이선균과, 베테랑 연출가 권석장 감독의 몫이 크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인혁과 이국종
출연을 결정했을 때, '중증 외상'을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이국종 교수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 한 살 어린 이 교수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내가 연기할 최인혁이 저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작진이 따로 이 교수가 최인혁의 모델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이들이 처한 상황과 대사, 심지어는 수술법까지 이교수를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면서 느낌이 왔다.
"특히 환자에 대한 그 분의 희생이나, 외상센터를 설립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며 '뒷 일은 내가 책임질테니 일단 환자부터 살리고 보자'라는 최인혁의 신념을 만드는 데 정말 큰 도움을 받았죠.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골든타임 속 골든타임
23회 방송을 하는 동안 마취과 과장 지한구(정석용)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수술신을 촬영했다. 개복부터 봉합까지 풀 샷 원 테이크로 찍기 때문에 리허설도 길고, 슛이 들어가면 실제 상황처럼 긴장감이 넘쳤다. 나중에는 자문의사들도 인정한 '개복의 달인'이 됐다.
그 중 뭐니뭐니해도 첫 수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경험이 많은 실제 간호사의 도움으로 이뤄졌는데 메스와 가위를 건네받을 때의 손맛이 '짝' 달라붙었다. "비록 더미(사람 모형)였지만, 첫 메스를 댈 때의 긴장감과 짜릿함은 지금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눈을 빛냈다.
잊을 수 없는 환자는 콩팥을 적출했던 어린 아이다. 극 중 아이의 부모에게 환자 상황을 설명해 주는데 울컥하고 치받던 감정이 잊히지 않는다. 이선균은 촬영이 끝나고 실제로 울음이 밀려와 고생하기도 했다.
신은아(송선미)의 약혼자와 셋이 함께 밥을 먹었던 레스토랑 신에서는 최인혁과 혼연일체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최인혁의 힘든 상황과 개인적으로 지쳤던 일들이 오버랩되면서, 캐릭터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어요. 아~ 정말 일어나기 싫더라고요. 병원에서 오는 전화가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데 받기 싫어 혼났죠. 하하하"
▶변신
"배우로서 '변신'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는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캐릭터로 가득하다. 자유롭게 호감과 비호감을 넘나들었던 이유를 묻자 "어떤 물을 들여도 그 색깔이 될 수 있는 평범한 얼굴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며 조심스레 추측했다. 어릴 때는 독특한 얼굴과 목소리로 눈에 확 띄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배우로서 세월을 보내다 보니 지금의 모습을 가진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최인혁과 작별한 지금, 새롭게 변신할 캐릭터는 연극 '거기'의 춘발이라는 인물이다. 입에 붙은 경상도 사투리를 떼어내고 걸쭉한 강원도 사투리를 만들기 위해 맹연습 중이다.
"춘발이는 느끼~하죠. 졸부에다가 어떻게든 수컷으로서의 자신을 한 번 어필해 보려고 하는. '골든타임'에서 호흡을 맞췄던 정석용·송선미와 함께 21일부터 공연합니다. 홍보를 열심히 안 한다고 혼났네요. 하하하. 다음 작품도 잘 부탁드려요."·사진/서보형(라운드테이블)·디자인/박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