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양호교사인 최모(40)씨는 최근 화들짝 놀랐다.
"쌤 배가 존나 아파서 개짱나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양호실로 들어오는 초등학교 3학년 남학생의 첫마디였다.
언제부터 어떻게 얼마나 아팠는지 묻는 질문에도 자세한 정황을 설명하지 못하고, 통증을 참기 어려운지 욕설과 비속어를 내뱉을 뿐이었다. 최소한의 의사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글날을 앞둔 청소년들의 언어습관과 문화에 관한 우울한 자화상이다. 청소년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7일 법원은 얼마전 드라마 제목 '차칸남자'로 국어 파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KBS 2TV '닥치고 패밀리'에 대해 "저속하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방송의 공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청소년들이 쉽게 접하는 대중 미디어에서도 잘못된 언어를 무분별하게 활용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릇된 문화를 조장하는 셈이다.
특히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IT 인프라 확대에 따라 잘못된 통신언어는 삽시간에 전방위적으로 확산된다. 최근에는 비속어와 은어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 정부의 '청소년 언어문화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73%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 욕설을 실생활에서 쓰고 있으며 평균 20어절에 한 번꼴로 비속어, 은어, 유행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1518명 중 하루 10회 이상 욕설을 한다는 응답이 22.1%에 달했으며 3~9회가 30.4%를 차지했다. 1~2회 사용한다는 응답도 38.9%에 달했다.
국립국어원이 최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짱' '찌질이' '쩔다' '뒷담까다' '깝치다' '야리다' '존나' '빡치다' '엄창' 등의 비속어를 사용한 경험을 물어본 결과, 초등학생 97%, 중·고등학생 99%가 써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언어문화가 거칠어진 데는 청소년들의 열악한 삶의 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단순히 교육 문제만으로 보기 보다는 심리, 사회 등의 전체적인 영역에서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한글날 공휴일 지정' 여야 의원들 발의
최근에는 최소한 한글날 하루만이라도 우리 말과 글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최재천 의원(민주통합당)은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만드는 내용의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을 9일 국회에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한글날을 10월 9일로 알고 있는 성인은 64%에 불과했고, 20대의 경우 32.7%만 한글날을 알고 있었다.
길은배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는 "청소년들이 비속어를 통과의례적인 문화로 보는 경향이 있어 써서는 안된다고 제재하기 전에 품격있는 말과 글이 훨씬 좋다는 점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라도 국민 모두가 한글의 고마움과 우수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한글날을 반드시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썸타다·뉴비·엄크·움짤 '판치는 은어'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비속어는 대체로 축약형이나 외국어 혼합형, 의도적인 오표기형 등으로 나뉜다.
대통령 후보까지 나서 젊은층에 대한 친근감의 표시로 활용했던 멘붕(멘탈 붕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주로 여학생들이 사용하는 비속어 중 썸남은 (Something+남자)의 혼합 및 축약이다. 남자친구를 남친으로 그저 그런 흔한 남자를 흔남으로 외모와 매너가 좋다는 뜻의 훈훈한 남자를 훈남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나왔다.
열폭(열등감 폭발), 에바(오버의 변형), 썸타다(관심가는 남자와 잘돼가다) 등도 흔히 쓰는 표현들이다.
이런 어휘들은 모바일 메신저가 인기를 끌면서 새롭게 만들어졌다.
남학생들에게는 스포츠·게임 등 인터넷 커뮤니티나 카페 등을 통해 만들어진 비속어가 많이 쓰인다.
횽(형), 레알(진짜·정말), 뉴비(신입회원), 엄크(엄마+크리티컬), 짤(사진), 움짤(동영상), 덕후(일본어 오타쿠의 변형으로 만화나 게임 등에 빠진 사람) 현시창(현실은 시궁창) 등이다.
이에 대해 중학생 임지석(15)군은 "길게 쓰려면 자판을 조작하기 힘들어 글자 수를 줄이기 시작한 것 같다"면서 "그냥 재미로 쓰다보니 실제 말할 때도 습관화됐다"고 말했다./배동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