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 안주하기 쉬운 톱스타가 불혹의 나이에 진화와 도전을 거듭하는 모습은 무척 아름답다. 장동건(40)이 그렇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하 '신품')과 11일 개봉된 '위험한 관계'로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중인 그는 "바로 지금이 아니면 연기해 볼 수 없는 캐릭터에 자꾸만 마음이 끌린다"며 예전과 달라진 마음가짐을 털어놨다.
▶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까지 쉴 새 없는 강행군에 몹시 피곤해 보인다.
2년 가까이 계속 달렸다. '위험한…'의 중국 홍보를 마치고 추석 전날밤에 귀국해 달랑 추석 당일 하루 쉬었다. (코맹맹이 목소리로) 감기 증세가 있는데, 피곤해서인지 잘 낫지 않는다.
▶ 바람둥이 캐릭터에 재미를 붙인 것같다. '신품'의 김도진과 '위험한…'의 셰이판이 합쳐지면 전 세계 여자들 모두를 유혹하고도 남을 듯 싶다.
하하하. 아마도 둘의 '작업 기술'이 뭉치면 최강이겠지. 결혼하고 나서 오히려 연기의 자유를 얻었다. 미혼일 때는 손에 쥐고 있었던 나만의 것을 놓지 않겠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나만의 것이란 아마도 외모를 앞세워 연기하지 않겠다는 고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생기면서 훨씬 편안해졌다. 덤으로 '뭘 해도 할 수 있겠다'란 자신감까지 얻었다.
▶ 미세한 얼굴 표정 연기가 '위험한…'에서 돋보인다. 다른 영화들에 비해 유난히 많은 클로즈업 장면을 의식해서였나?
개인적으로 풀 샷보다 클로즈업 샷을 선호한다. 솔직히 풀 샷은 감정을 집중해 연기해도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 들어서다. (웃음)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얼굴 근육을 자주 움직이는 편도 아니다. 이번 작품에서 내가 그동안 안 썼던 얼굴 근육을 많이 쓴 것처럼 보였다면, 아마도 이마 주름이 자주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마 주름은 20대부터 있었는데 웬만해선 드라마나 영화에서 안 보여주려 했었다. 그러나 '위험한…'에선 잘 써먹었다. 나이 먹어 조금 뻔뻔해졌다고나 할까, 하하하.
▶ 자타 공인 국가대표 미남 배우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드라마 복귀가 결정됐을 때 주위에서 "이젠 HD 시대다. 얼굴 관리 안하면 큰일난다"는 경고를 받고 나서도 내심 '이 얼굴이 어디 가겠어'란 근거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첫회를 본 순간 예전보다 확 늙어버린 내 얼굴에 꽤 큰 충격을 받았다. '다시는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하지 않아야 겠다'란 회의마저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이라도 출연했으니 다행'이란 생각으로 바뀌더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한편으론 좋은 일이다. 옛날 같았으면 어디 망가질 엄두나 냈겠나. 연기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긍정적이다.
▶ 장백지와 '무극' 이후 오랜만에 재회했다. 장쯔이는 '워리어스 웨이'에서 공연할 뻔했다. 다시 만난 소감은.
장백지는 그동안 많은 사건(결혼과 누드 사진 유출 및 이혼)를 겪어서인지 눈빛이 깊어졌다. 처연해졌다고나 할까. 중국에서는 장백지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대단하다. 장쯔이는 여전히 시원시원한 성격이더라. 촬영장에서 둘의 사이가 나빴다는 중국 언론의 보도가 있었는데, 약간의 경쟁 의식은 있었겠지만 실제론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었다.
▶ 그나저나 영화에서 죽었던 횟수로 따지면 국내 남자 배우들 가운데 제일 많다.
맞다. 피칠갑하고 죽은 횟수로 치면 내가 단연 최고다. 친할머니께서 아흔 가까운 연세에도 무척 정정하신 편이다. 추석 때 "이젠 '마이웨이'처럼 네가 죽는 영화는 싫다"고 말씀하시더라. 영화만 좋다면 죽고 안 죽고가 중요하겠나.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앞으론 안 죽으려 한다.(웃음)
▶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상반기까지는 촬영에 들어갈 작품이 없다. 가족과 함께 당분간 쉴 생각이다. 얼마전 두 돌이 된 아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매우 절실하다. 아빠와의 애착기가 형성되는 나이라는데 걱정이다. 둘째 계획은 아직 없다. 아내도 나도 한 명 쯤은 더 낳자고 얘기는 나눠본 적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시기를 잡지는 않았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지. 여기서 자연의 순리는 굳이 부연 설명하지 않겠다. 하하하.
·사진/한제훈(라운드테이블)· 디자인/박선영